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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Jun 11. 2024

읽는 것과 나 사이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책이 있는 곳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읽을 책이 지금 가방에 있어도, 집에 잔뜩 쌓여있어도 상관없다. 서점이든 도서관이든 한 권이라도 집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읽을 시간은 촉박한데 읽을 책들은 많다. 새 책이 온 지 얼마 안 되었다면, 서점에선 양심에 찔려서라도 꾹 참고 발걸음을 되돌린다. 하지만, 도서관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나 지금 이거 읽을 시간 되나?’ 하는 계산도 잠시 이 책 저 책, 한 아름이다. 


요즘에는 도서관에 가도 2층 일반 열람실에는 잘 가지 않는다. 남편은 2층으로 올라가고, 나는 아이들과 1층 어린이 열람실로 곧장 들어간다. 아이들이 보면 좋을 만한 동화책과 초등 저학년용 책을 빌린다. 윤우와 함께 축구 관련 책을 찾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작년만 해도 ‘나는 언제쯤 서점과 도서관을 편하게 오갈 수 있을까.’ 아쉬워했었다. 1년 전 6월, 도서관에서 빌려올 책이 있었다. 남편은 은서와 나를 도서관에 내려주고 머리를 깎으러 갔다. 은서 데리고 책을 빌릴 수 있을까 우려했지만, 역시나였다.

“가자~ 가자~” 

“엄마아~ 엄마아?” 

조용한 도서관에 아이 목소리가 크게 울린다.

“쉿. 쉿. 도서관에선 조용히 해야 해.”

“쉬이잇?”

따라서 크게 말한다. 어르고 달래며 후다닥 필요한 책들만 빌렸다. 책 한 번 빌리러 올라갔을 뿐인데 녹초가 되었다. 이제는 2층에 가더라도 은서가 잘 기다려 준다. 1년 사이에 많이 자랐다. 이렇게 힘든 길이 될 걸 알면서도 아이들을 데리고 책이 있는 곳으로 자주 갔다. 어릴 때부터 도서관과 서점이 친숙한 공간이 되길 바라서였다.



© thoughtcatalog, 출처 Unsplash


내가 도서관과 가까워진 것은 중학교 1학년 때 특별활동 부서로 도서부를 하면서다. 중학생 땐 내내 버스를 타고 다녔다. 고등학생 때 걸어 다닐 수 있는 동네로 이사하면서 도서관은 더욱 자주 가는 곳이 되었다.

시험 기간 때, 공부하다가 답답하면 시험 끝나고 할 일 목록을 적으며 힘을 내곤 했었다. 1순위가 만화책 빌리기, 도서관 가서 책 빌리기다. 그다음이 영화 보기다. 보는 것 이전에 읽기의 즐거움이 먼저였다. 마음 편하게 책 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시험을 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책방 대여점에 들렸다. 못 온 사이 신권이 여러 권 나와 있다. 못 본 권을 발견하고 뽑아 들 땐 짜릿하다. 집으로 가는 내내 둥둥 떠서 걷는 기분이다. 

공부하느라 애써 지나친 도서관 열람실에도 떳떳하게 들어간다. 머릿속으로 그리던 것처럼 여유롭게 서가 사이를 거닌다.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순간이다. 가방은 묵직한데 발걸음만큼은 가볍다. 내겐 여유롭게, 자유롭게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최고의 보상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현재 시험 기간과 가장 유사한 심리 상태가 퇴고할 때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능력도 못 되지만, 다른 것을 신경 쓸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모두 미루고 퇴고에 집중한다. 조금 더 완성도 높은 글로 다듬기 위해, 조금의 후회라도 남기지 않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

평소에도 읽을 책이 잔뜩 밀렸다고 행복한 투정을 부리는데, 이땐 그때의 투정마저 그리워진다. 내 글만 읽고 또 읽으니 다른 글도 읽고 싶다. 퇴고가 끝난 후, 어떤 책을 먼저 읽을 것인지 순번을 매기면서 잠깐 행복한 시간을 가진다. 



© sabinasturzu, 출처 Unsplash


남편과 도서관에서 나오며 한 얘기가 있다. 오랜만에 도서관 오니 또 좋다고, 도서관에 비하면 우리 집은 책이 많이 없는 거라고, 애들 책 더 사주자고 한다. 책이 많으니까 이것저것 읽고 싶어 지더라면서 말이다.


다른 집엘 갔다 오는 날엔 책이 없더라는 얘기를 아이들이 먼저 꺼낸다. 

“엄마, 00 형아 집엔 책이 하나도 없어!”

“그래? 하나도 없진 않을 텐데….”

“우리 집은 (둘러보며) 어디 가도 책이 있는데….”

다른 집엘 갔다 오는 날엔 책이 없더라는 얘기를 아이들이 먼저 꺼낸다. 


도서관에 가면 그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지고 기분 좋다.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읽기에 대한 자극을 많이 받고, 환경의 중요성을 느끼고 온다. 내가 학생일 땐 버스를 타고서라도 도서관을 오가며 책에서 재미를 찾았다. 아이들이 책을 안 읽는 것은 책 보다 재밌는 게 더 많거나 재밌는 책이 집에 없어서다. 

동화책 세 권을 거실 책상 위에 두었다. 놀다가 잠시 집에 들른 선우가 어느새 빌려온 책을 보고 있다. 책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키워갈 아이들을 위해 부지런히 책 배달을 해야겠다. 


도서관에서 꿈을 키워나가던 청소년은 이제 자신의 책을 도서관에서 만난다. 책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꿈꾸고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읽기와 나 사이에는 오래된 확신과 신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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