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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May 28. 2024

내가 지나온 길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



© sandym10, 출처 Unsplash


저녁을 먹고 막 치운 참이었다. 선우와 윤우는 거실 책상에서 종이접기를 하고 있었다. 은서도 오빠들 따라 색종이를 구깃구깃 접어서 보여준다. 그때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며칠 전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올 정도로 몸이 안 좋고, 기분도 우울하다고 했다. 

친구에게는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다. 서로 돈을 조금 더 모은 뒤 내년이나 내후년에 결혼식을 올리려고 한다. 친구는 결혼에 관해 마음이 복잡한 듯 보였다. 결혼한 후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런저런 가정을 세운 뒤 걱정의 늪에 빠져 있었다. 그중 하나가 ‘남자친구가 잘해주는 게 결혼 전이어서 그럴까? 결혼해서도 지금처럼 잘해줄까?’이다. 자기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 자신이 너무 예민한 건 아닌지 물었다. 


나도 결혼 초기에 그랬다. ‘연애할 때와 결혼해서가 다르면 어쩌지? 그럼 너무 서운할 것 같은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했다. 남편의 말과 행동에 곤두서있었다. 조금이라도 연애할 때와 다르면 서운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혼이라는 낯선 환경 안에 혼자 던져진 기분이었다. 불안하고, 걱정되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나만 이러는 건지 궁금했다. 주위에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스물다섯인 친구들이 털어놓는 고민은 연애와 직장 이야기였다. 이제는 나와 동떨어진 세계였다. 친구에게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고, 나도 그랬었다고, 혼자 걱정하기보다 남자친구와 함께 얘기하고, 시간을 더 보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고민은 남자친구가 자신과 다른 성향이어서 좋은 한 편, 돈에 대해 생각하는 게 다르다고 했다. 친구에게 돈은 아끼고 모으는 것인데 남자친구에게는 투자해서 돈을 불려야 하는 존재다. 집도 대출받아 마련할 거지만, 최소한의 대출을 낼 거라고 했다. 나도 친구와 똑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살다 보니 생각이 조금씩 변한다. 절약해서 돈을 모으는 걸 기본으로 하되 투자해서 자산을 늘려 가는 것도 필요하다.

결혼과 관련해 걱정이 많으니 몸도 아픈 거라고, 부정적인 기운이 자신한테 붙어 있게 하지 말라고, 일부러라도 좋은 생각을 많이 하라고 얘기해 주었다. 답답할 때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영상을 찾아본다. 결혼뿐만 아니라 친구, 자식, 고부 관계, 취업 등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민에 법륜 스님이 명쾌하게 답변해 주신다.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말한다.

“스님, 그렇게 말하기는 쉽죠.” 

스님의 대답 속에는 공통점이 있다. 내게 일어나는 문제와 마음의 고통을 바깥이 아닌 나로부터 찾는다. 내가 움켜쥐고 있는 생각 하나만 바꾸면 마음이 편해지고,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친구에게도 법륜 스님의 영상을 추천해 줬다. 내가 있어 큰 위로가 된다는 말로 고마움을 전했다.



© jeshoots, 출처 Unsplash


모처럼 아이들이 9시에 자고, 나도 일찍 할 일을 끝낸 날이었다. 영화 한 편을 봤다. 친구가 생각나서 이 영화 봤냐고 물었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안 자고 있었다. 영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소방관과 경찰관이 나오는 드라마 이야기로 넘어갔다. 지금 공부 중인 공무원 시험으로 자연스레 얘기가 이어졌다.


한 직장에서 10년을 일하고 퇴사한 지 4개월 차. 친구는 초조하고 불안하다고 했다. 공부는 하고 있는데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꼭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될까 말까, 한 시험인데 공부를 왜 하는지도 모르고 하는 자신을 답답해했다. 다가오는 날짜에 시험만 쳐 볼 생각인데 벌써 한 번 훑었다고 한다. 공부도 퇴사 전부터 조금씩 준비해 오고 있었다. 공부해서 대학 가고, 졸업 후에는 곧바로 취업해서 지금까지 일해왔다. 이렇게 쉬어 본 적이 없었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 10~14시간씩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호기심으로 시작한 자신과 다른 것에 놀랐다고 한다. 나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면 그렇게 했을 거라는 말에 또 한 번 놀란다. 나는 공부 머리도 없고, 무엇보다 그 일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을 거기 때문이다. 강한 동기가 없으면 시작을 안 하는 사람이다. 


간호사도 간절해서 되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겪고 느끼는 일들로 내 안의 불씨가 꺼져버렸다. 내적 동기를 유지해야만 오래간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그럼 자신을 잘 알아야겠다고 한다. 나는 결혼과 육아 덕분에 조금 더 빨리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바로 찾아지지 않는다. 그 시간이 답답했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고민만 했으면 몰랐을 테다. 고민은 계속하면서 이것저것 해봤던 일이 종합되었다. 일기 쓰며 내게 묻고 답하기, 공모전에 응모하기, 글쓰기 수업 듣기, 책 속 내용 실천하기.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은 ‘글쓰기’라는 것을 찾았다. 


친구는 나와 반대다. 간절하진 않지만, 막상 이루고 나면 오랫동안 하는 편이었다. 시작했으면 뒤처지기 싫어하는 편이라고 했다. 쉬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기보다 몸을 움직이며 찾는 게 낫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시간제 일을 구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얘기하니, 그것도 좋겠다고 한다. 친구에게도 어느 순간 ‘이거야!’ 하는 게 올 것이다. 어쩌면 준비 중인 공무원 일이 ‘이게 내 길이었어!’ 할 수도 있고, 아무 미련 없이 그만두고 나올 만큼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도 있다.




© julianhochgesang, 출처 Unsplash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말고 지금, 현재를 살라 한다. 내가 매일 오가는 길에 서 있는 나무나 멀리 보이는 산, 잔잔하게 흘러가는 강물 이 모든 게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내가 딛는 땅은 보도블록이 깔려 있어도 수억 년 전에 생긴 땅이다. 낮에 뜨는 해도 밤에 뜨는 달도 모두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는 존재다. 현재를 살아가는 나지만 과거의 나도 미래의 나도 이어져 있다. 때로는 현재만 보지 말고,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어떨까. 과거의 내 시간이 현재의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


결혼과 육아에 관해 물어볼 친구가 없어 막막했었다. 그 시기가 지나가니 내 경험을 친구들에게 들려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힘들고 답답한 순간이 와도 나중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좀 더 현명하게 지금을 지나갈 수 있을까? 생각한다. 상황과 조금 떨어져 바라보니 지금 하는 고민이 큰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잘 지나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내가 지나온 길은 누군가에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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