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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May 21. 2024

오늘이라는 점을 기록하는 이유




© stereophototyp, 출처 Unsplash


핸드폰에 <네이버 블로그>라는 앨범첩이 있다. 블로그에 올린 사진을 다시 저장하면 자동 분류가 된다. 블로그에서 혼자 추억 여행하다가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 저장한 게 대부분이다. 지나간 모든 시간이 과거가 되지만 특히 앨범에 있는 사진을 보면 ‘아, 옛날이여!’ 하게 된다. 어린아이들과 조금 더 젊은 내 모습이 사진에 담겨 있다.


글을 쓰다 보면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오늘은 내 과거 속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일을 떠올릴지 두근거릴 때도 있다.

유치원부터 시작되는 기억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비교적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받아쓰기와 일기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수학을 언제부터 어려워하게 되었는지, 학창 시절의 그 일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같은 일들이다.

작년 3월 출간한 세 번째 에세이 《소신대로 살겠습니다》를 읽은 친구가 말했다.

“나는 그걸 다 기억하는 네가 너무 신기해!”

작고 대수롭지 않은 일도 쓰고 기억하면서 특별해진다. 어제와 비슷한 듯 다른 오늘을 기록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기록으로 남긴 현재의 생각과 생활이 훗날 중년, 노년기의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어떤 사람이 되어 있더라도 내가 써온 기록은 그에 대한 근거가 될 테다. 쉽게 변하고 빠르게 사라지는 세상 속에서 일상을 쓰는 것은 하루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다. 인생을 끝마칠 땐 오늘이라는 점이 수많은 선으로 이어져 있을 것이다.



© hannaholinger, 출처 Unsplash


하루에 대한 마침표는 아이와 나의 일상이 담긴 사진과 기록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최근 신경 쓰이는 두 가지 일이 있었다. 하나는 사고 싶은 물건을 사느냐 마느냐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고, 다른 하나는 하는 일이 잘되지 않는 데에 있었다. 그날 필사한 《명상록》 문장은 이러했다.



나는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는가. 그 일은 인류의 유익을 위한 일이어야 한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나는 그 일이 신들에게서, 그리고 만물이 생겨나는 근원에서 온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 일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8권 23.



필사하면서 생각했다.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인류의 유익을 위한 일인가?

한 가지는 분명했다. 물건을 사는 건 타인에게 이로운 일은 아니지만 내가 하려는 일은 이로운 일이었다. 어째서 나는 도움 되지 않는 일에 시간과 마음을 쓰고 있지? 선명하게 구분되는 그 하나가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알게 해 주었다. 물건에 대한 마음은 아예 정리를 하던지 사던지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는 시간까지 줄여서 더 중요한 일에 시간을 썼던 스티브 잡스. 그가 같은 옷만 입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내가 얼마나 엉뚱한 곳에 시간을 쓰고 있었는지가 더 분명해진다.

매일 필사하고 생각하고 쓰는 이 시간이 하루의 안전장치다.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잘 나아가고 있는지, 엉뚱한 길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내 마음은 괜찮은지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내 안에서 나온 답들로 하루라는 점을 찍는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퇴고 중인 원고를 붙잡고 씨름하는 날에도 마침표가 찍힌다.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시간을 쪼개어 쓴 글을 읽고 다듬고 고치고 지우는 과정을 반복하던 날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이면 그제야 속에서 울컥 무언가 치솟는다. 아까 조금만 더 부드럽게 말할걸, 인상 쓰지 말 걸, 소리치지 말 걸…. 손에 힘이 빠지고 시선이 흐려지면서 눈물이 툭 떨어진다.

만약 엄마로서의 나로만 충실했다면 아이들에게 더 좋지 않았을까. 내가 너무 욕심부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가라앉은 마음으로 잠이 들고 다시 일어났을 땐 전날과 똑같은 일과가 반복된다. 내가 쓴 글을 만족할 때까지 다듬고 싶다는 마음이 눈 뜨자마자 책상 앞으로 나를 이끈다.

소란스러운 주위 소음을 피해 에어팟을 낄 때면 베토벤의 곡을 들었다. 묵직하고 웅장하고 슬픈 곡이 ‘괜찮아, 할 수 있어,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내 삶이 자연스레 흘러가는 통로 가까이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아마도 하루 중 내가 가장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 글 쓰는 엄마로 사는 것은 욕심도 억지도 아니다. 내 삶이 흘러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글쓰기로 오늘이라는 점을 기록하는 이유는 내가 잘 살기 위해서다. 늘 육아와 글쓰기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그럼에도 오늘 쓰는 글에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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