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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May 07. 2024

나를 한 줄로 표현해 본다면



© amr_taha, 출처 Unsplash


아들 둘을 낳고 기르면서 다시 사회로 나가리라 생각했던 시기가 지금이었다. 둘 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나도 일하러 나가야지, 그전까지 육아에 집중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는 시간을 가져야지 생각했었다.


선우가 일곱 살, 윤우가 여섯 살에 처음 기관 생활하기 시작했다. 유치원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압박을 혼자서 느끼고 있었다. 누가 일하러 가라 한 것도 아닌데 이젠 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지난 6년간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찾았던가. 확신이 없었다. 그맘때 셋째가 생기면서 고민에 대한 답변 기간이 자동 연장되었다.


셋째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여러 감정이 겹쳤다. 새 생명에 대한 기쁨, 다시 육아를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더 고민해 볼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이었다.



셋째 임신 중에 하혈하면서 병원에 3일간 입원해 누워있던 적이 있다. 그때 팔에 주사를 놓고, 수액을 바꾸고, 설명하는 간호사의 모습을 보며 ‘나는 어떤 간호사였을까? 다시 간호사로 일한다면 어떨까?’ 병원에서 일하는 내 모습을 여러 번 그려봤었다.

간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한 시간보다 간호사가 되어 일한 시간이 더 짧다. 결혼 전에 무슨 일을 했었냐 물으면 간호사였다고 말하기 민망하다. 공부한 시간과 면허가 아깝지 않냐고 묻는 사람도 많다. 아이들을 가까이서 돌보며 읽고 쓰는 삶을 사는데 후회가 없다.


선우와 윤우를 유치원에 보내놓고, 갓 태어난 은서를 돌보며 글을 썼다. 다음 해, 선우는 초등학교에 가고 윤우는 같은 병설 유치원에 다니면서도 똑같은 일상이었다. 이제는 누워만 있지 않은 막내를 데리고 있으면서 계속 글을 썼다. 그사이 공저 책, 개인 책, 전자책도 출간하는 수확을 얻었다. 글을 계속 써 오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분명하게 알았다.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일상을 따뜻하게 담아내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다.




© gift_habeshaw, 출처 Unsplash



“와하하. 어차피 책에 쓰실 거잖아요~”

남편 직장동료들을 만났다. 함께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갔다. 은서와 나이가 같은 아들 한 명을 키우고 있는 직장동료는 한 달 뒤 육아 휴직을 쓴다고 한다. 아내가 《연년생 아들 육아》를 읽고 자기가 쓴 줄 알았다고, 너무 공감이 많이 되더라는 얘기를 해줬다. 그 말을 남편에게 처음 전해 들었을 때도 가슴이 벅찼지만, 당사자의 남편에게 들으니 또 달랐다. 아내가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6개월간 육아 휴직을 쓰게 됐다고 한다.


“반장님은 집에 있을 때 뭐 하세요?”

내게 물었다. 그때 남편이 화장실 간다며 벌떡 일어났다. 일부러 자리를 피해 주는 거라며 호기롭게 나갔다. 노래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집에 방음실도 설치했다는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화장실 갔던 남편이 돌아오며 무슨 얘기했냐고 웃고 있는 우리에게 물었다.

“반장님 노래 연습한다면서요~ 집에 방음실도 있다던데?!”

그 얘길 했냐고 멋쩍어한다. 어차피 책에 쓸 거 아니냐고 말하기에 벌써 썼다고 답했다.


나의 주 글감은 남편과 아이들이다. 우리 아내 책 나왔다고 주위에 선물도 하고, 홍보도 하면서 정작 본인은 제대로 읽은 책이 한 권도 없다. 읽은 사람들이 그때 왜 그랬냐 말하며 웃어도 무슨 얘기인지 모른다. 이 정도면 불안해서라도 읽어볼 법한데 그 부분만 찾아 읽어보고 만다.



결혼과 육아로 인해서 전업주부가 된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나도 갑작스럽게 전업주부가 되었지만, 이 순간을 잘 보내고 싶었다. 꼭 대단한 성과를 이뤄야 한다,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내려놓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고 했다. 스스로가 정한 ‘사회생활 재출발’ 시점이 다가왔을 때, 나도 이젠 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압박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셋째가 그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좀 더 확신을 가지는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아들 둘이 초등학생이 되니, 일에 관한 이야기가 다시금 들려온다.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지금 내 일이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디에 자주 가고, 어떻게 행동하는 지를 보면 모두 글쓰기와 관련 있다. 있었던 일을 어떻게 써 볼까 생각하고, 서점과 도서관에 자주 가고, 매일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바느질을 좋아하는 사람,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 등 저마다 좋아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 일을 더 깊이, 계속하다 보면 어느새 나를 수식하는 문구가 된다. 나는 글 쓰는 게 좋다. 나를 한 줄로 표현해 본다면 ‘글 쓰는 엄마’다. 내가 보내왔던 하루가 모여 이 한 줄을 만들었고, 어느새 나를 말해주는 수식어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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