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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Apr 30. 2024

새로 생긴 습관



© fujix_pal, 출처 Unsplash



글을 쓰면서부터 새로 생긴 습관이 있다. 이 습관들은 글쓰기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계속 쓰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더욱이 내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 준 좋은 습관들이다.


집을 좋아하는 집순이에게는 외출도 명분이 필요하다. 집에만 있으면 갑갑하지 않냐, 외롭지 않냐, 심심하지 않냐, 우울증 오지 않느냐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 편히 내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휴식이다. 무엇보다 집에서도 누릴 수 있는 즐거움과 행복이 커 심심할 틈이 없다.

그럼에도 일부러 약속을 잡지는 않아도, 외출할 일이 있으면 선뜻 나간다.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에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바깥이 집안보다 쓸거리를 더 많이 얻어 올 수 있어서다.

아이가 놀이터에 가자고 해도 급한 일이 아닌 이상 잠시 내려놓고 나갈 수 있는 이유다. 아이를 위한 동시에 나를 위한 일이다. 아이들 소리로 채워진 놀이터에 있으면 근심이 잠재워진다. 같이 모래놀이 하면서 어린 시절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선우 윤우 어릴 때를 떠올리기도 한다. 아이는 미끄럼틀 타고 그네 타는 것과 같은 단순한 것에서 기쁨을 얻는다. 그런 아이를 보면 내 마음도 덩달아 순수해진다.

오고 가는 사람들, 스치는 말,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새소리, 차 소리가 어우러진 시공간에 내가 존재한다. 일상을 소재로 글을 쓰니 무엇이든 글감이 될 수 있다. 오래전 철학자와 작가들이 왜 산책을 권했는지 알 것 같다. 글감을 수집하고, 영감을 얻고, 사색에 잠기는 시간이 내 글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대화도 글감이 되거나 글에 인용할 수 있다. 아이들 얘기를 귀 기울여 듣다가 질문, 혼잣말, 마음 표현을 주워 모은다. 방금 뭐라고 했는지 되물은 다음, 옆에 있는 종이나 핸드폰 메모장에 기록해 둔다.

자기 말이 소중한 쓰임을 받는다는 인상을 준 걸까. 급하게 받아 적는 엄마를 보며 궁금해하고 신기해하면서도 웃는다. 아이들과 나눈 대화나 예쁜 말들을 적어 놓으면 나중에 글 쓸 때 큰 도움이 된다. 그때 상황이 어땠는지, 내 감정은 어땠는지 더욱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두 번째 에세이인 《연년생 아들 육아》도 그렇게 나올 수 있었다.

때때로 꿈을 적어둔다. 소설 같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눈을 뜨고 나서도 생생하다. ‘와, 방금 꿈 뭐지? 영화로 나와도 재밌겠는데!’ 그때 얼른 적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조금 있다가 적어야지 미뤘다가 기억이 안 나서 아까운 꿈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적어두면 나중에 이야기로 만들어질 가능성도 남겨두는 게 된다. 적자생존! 쓰는 사람은 적어야 산다.




© marcospradobr, 출처 Unsplash



힘든 일을 만났을 때, 글쓰기가 마음을 다잡아 주기도 한다. 단조롭고 평화로운 일상보다 고통, 시련, 어려움은 더 역동적이고 흥미로운 소재가 된다. 지금은 아니어도 언젠간 이 일을 내 글로 풀어낼 날이 올 거라 여긴다. 묵혀두고 쓸 날을 기다린다. 그때 그 일이 나를 한 단계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만들었다는 걸 쓰면서 알게 될 때가 많다. 이런 생각을 하면 괴로운 일도 잘 이겨낼 힘이 생긴다. 거창하게 고통의 승화까지 가지 않아도 일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가 하나의 에피소드로 남는다.


일요일 오전, 인터넷이 이상했다. 와이파이는 잡혀 있는데 속도가 느려서 창이 열리는 데 한참 걸렸다. 안 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알뜰폰 요금제를 쓰는데 바로 전날 데이터를 모두 써 버렸다. 추가 데이터 요금 폭탄 맞을 게 무서워 데이터를 쓸 수도 없었다. 올려야 할 글이 있는데 인터넷이 되지 않으니 답답함을 넘어 짜증이 났다.

스마트폰에 시간을 많이 뺏긴다 싶을 때 한 번씩 디지털 디톡스를 한다. 전화, 문자만 되는 핸드폰에 유심을 옮겨 사용함으로써 시간의 주도권을 가져오려 한다. 점점 스마트폰으로 되돌아오는 기간이 짧아지지만, 효과는 있다. 비 스마트폰을 보는 순간, 이 핸드폰의 사용 목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나의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인터넷 문제로 인해 강제로 외부와 단절됐다. 겨우 인터넷 하나 안 되는 걸로 답답해하고 짜증 내는 내 모습이 더 못마땅했다. 한편으론 예기치 못한 돌발상황으로 ‘쓸거리가 하나 생겼는걸.’, ‘왜 내가 이 정도까지 답답해하는 거지?’ 쓰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일요일 인터넷 사건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일상의 이벤트가 좋은 글감이 된다고 생각하면 화낼 일이 없다. 실제로 인터넷 사건이 글쓰기 소재로 전환되는 순간 화나거나 답답함도 사라졌다.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말이다.


내겐 글쓰기가 밥 먹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이 되었다. 간간이 글을 쓰던 때와 비교했을 때 이러한 변화는 작게만 볼 수 없다. 일상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일을 모두 글감으로 바라보고 메모한다. 작은 거라도 유심히 관찰하는 습관을 지니면 내 삶이 더 윤택해진다.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우리 일상도 마찬가지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예쁘고 소중한 인생이다.

쓰는 삶이 깨닫게 해 준 귀한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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