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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Jun 04. 2024

삶이 아니라면 글에 묻어 나올 수 없는 진심



© annaelise, 출처 Unsplash


작년 겨울, 내 삶의 핵심 가치관 열 가지를 쓰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중 ‘선함’이 4위에 올라갔다. 독서와 글쓰기가 열 가지 안에서 하위권에 들어간 게 의외였다. 이렇게 쓰면서 알게 된 것은 내게 중요한 가치관은 읽고 쓰는 것 이전에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었다. 선하게 산다는 것은 단순히 착하게 산다는 것과는 다르다.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착하게 행동하는 것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함은 같지 않다. 성인이 된 후 나를 지탱해 준 정신적 요소가 이 ‘선함’이었고, 이에 벗어나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삶이 있고 글쓰기가 있다. 쓰는 대로 살아지기도 하지만 산 만큼 쓸 수 있다.


다양한 경험을 할수록 글쓰기 소재도 다양해진다. 직장도 다니지 않고, 만나는 사람도 많지 않은 나는 경험 면에서는 부족하다. 그렇지만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과거에도 있고 현재 삶에도 있다. 

‘이런 삶을 살고 싶다.’ 느끼는 동시에 ‘이런 글을 쓰고 싶다.’라고 느끼게 해 준 분이 있다. 바로 이해인 수녀님이다. 수녀님의 글은 내게 정신적 중심축이다. 수녀님의 글을 읽을 때뿐만 아니라 수녀님을 떠올리기만 해도 나쁜 마음이 씻겨 나가는 것 같다. 검소하고 단정한 수도자의 삶. 일상의 작은 것도 소중하고 감사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내 일상도 귀하고 감사하게 여기게 되었다. 


간호사 국가고시를 앞둔 때에 이해인 수녀님을 처음 알게 됐다. 고3보다 더한 압박감을 느끼며 학교에서 강제적인 자율학습을 했었다. 그 숨 막히는 공간 안에서 수녀님의 책은 내게 부적처럼 느껴졌다. 가방과 책상 서랍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집중이 안 되거나 답답하면 잠깐 꺼내 읽었다. 그러면 다시 공부할 힘이 생기고, 이 모든 게 감사해졌다.


신규 간호사로 일할 때도, 아이를 키울 때도 자주 수녀님을 떠올렸다. 내가 힘든 순간마다 그분을 떠올리며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삶과 글의 일치에 있었다. 삶이 아니면 글에 묻어 나올 수 없는 진실한 선함이 글 속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 fan11, 출처 Unsplash


정제된 언어로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시의 세계는 좀처럼 가까워지기 어렵다. 한 발짝 다가섰다 싶으면 한 발짝 멀어진다. 알고 싶은 대상 주위를 뱅글뱅글 맴돌기만 한다. 그래서일까. 시인들의 창작 과정은 뭔가 비밀스럽고 신비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고통을 시로 쓰는 시인의 얘기를 들었다. 자신에게 아픔인 일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기도 하고, 일부러 괴로운 상황에 잠시 자신을 놓아두기도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한 편 한 편 탄생한 시들을 어떻게 가볍게 읽을 수 있겠는가. 시집을 사서 펼쳐보기 전, 큰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겼다. 시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시인이 보이는 듯했다. 


조금 쌀랑한 바람이 불었다. 여름이 오기 전, 마지막으로 부는 봄바람 같다. 뒤편에서 저녁밥 짓는 소리가 난다. 전기밥솥이 푸식푸식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이상하다. 시를 읽을 때도 이와 비슷하게 이상하고 묘한 감정이 든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나는 시집을 손에 들고 늦도록 밖에 있었던 날이다.           



© hannaholinger, 출처 Unsplash


견유학파는 ‘필요한 것이 적을수록 신에 가까운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여겼다. 그들처럼 극단적으로 소유하지 않을 필요는 없지만, 무엇에도 얽매여 있지 않은 정신은 부럽다. 

나는 걱정이 많고, 많은 것에 얽매여 사는 사람이다. 곁가지가 아닌 본질을 보자고 마음먹어도 흔들리기 일쑤다. ‘살아보니 별거 없더라.’라는 말로 인생을 퉁치고 싶지 않다. 더 나은 내가 되고 더 나은 인생을 살려는 마음도 내려놓고 싶지 않다. 한편으론 정말 사는 건 별것 없는 게 아닐까, 이것저것 신경 쓰는 마음 다 내려놓고 가볍게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종손 며느리니까, 외며느리니까, 세 아이 엄마니까, 결혼했으니까, 가정이 있으니까… 이런 역할에 매여 주춤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겁먹지 않으면 좋겠다.      


기본 실력과 몸에 밴 겸손함을 생각하다가 손흥민 선수와 그의 아버지 손웅정 감독이 떠올랐다. 언젠가 남편이 보던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를 찾아 읽었다. 

손웅정 감독은 배움이 부족하다고 여겨 책을 읽고, 밑줄 긋고 메모해 둔다. 그런 책을 아들에게 권한다. 그리고 늘 겸손할 것을 강조한다. <들어가는 글>에 서점에 가 보면 오랫동안 지식을 쌓은 사람들의 좋은 책이 많은데 자신이 책을 쓰는 게 가당키나 한가 의구심이 든다고 써 놓았다. 그의 글에는 아들과 축구에 대한 사랑, 삶을 대하는 태도, 진실한 열정이 뚝뚝 묻어난다.      


삶이 글이 된 사람의 글은 진심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삶과 글쓰기는 같이 간다. 그럼에도 조금 더 선행되는 것은 삶이다. 

퇴고 중인 글이 마음만큼 잘 풀리지 않았다. 그 이유를 여기에서 찾아본다. 불필요한 말과 행동을 삼가면서 내 안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타인에게 도움 되는 글도 중요하지만, 나를 보살피는 글도 중요하다. 쓰면서 깨닫는다. ‘아, 지금은 나를 돌보는 글쓰기가 필요한 거구나.’ 나에게 부족한 것을 글로써 찾고 채워간다. 

결국,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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