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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Jul 02. 2024

쓰는 것과 나 사이



© hannaholinger, 출처 Unsplash


생각하던 일이 생각지도 못한 반대를 만났다. 지지하고 이해해 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다시 혼돈 속에 갇혀 버렸다. 나아가는 것 같지 않고 제자리를 뱅글뱅글 맴돈다. 마치 항해 중에 소용돌이를 만나 빠지고 헤어 나오고를 반복하는 것 같다.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 빠져나오겠지만 빠져나오기까지의 시간이 더디고 답답하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기분이 나아지더라. 이것저것 떠올려 보지만 한숨만 나온다. 글 쓰는 동력마저 멈춰 이 짧은 글을 쓰는데도 오전이 다 지나가고 오후가 되었다.      


쓰기 힘든 날엔 쓰기 힘들다고 쓰고, 안 쓰고 싶은 날엔 안 쓰고 싶다고 쓴다. 이게 또 하나의 돌파구가 되어줄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다. 그럼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야, 막막했다. 그다음에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해하게 되었다. 이해하고 나니 그러면 어떻게 하지, 다음 생각으로 넘어갔다. 자기 전 복잡한 마음이 일어난 직후 쓴 일기장에서 정리가 되었다.    

  

일기를 쓰면서 나를 무겁게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번호를 붙여 써 보았다. 열 가지나 되었다. 쓰기 전까지는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마음이 분산되어 있으니 일이 잘되지 않고 답답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것은 이 열 가지 대부분이 내 선에서 해결 가능하다는 점이다. 장기적인 문제도 있지만 하나씩 해결함으로써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다.       


    

© jeshoots, 출처 Unsplash


선우, 윤우는 1학년 때부터 일기를 써 오고 있다. 처음에는 왜 매일 써야 하냐며 힘들어하더니 이젠 습관이 되었다. 두세 줄 문장 필사도 하고, 일기도 쓰고, 책 읽고 독서록도 쓰니 '쓰기'에 대한 두려움과 어려움은 없다.


내게 일기 쓰기는 초등학생 때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었고, 사춘기 때는 건전하게 감정 해소하는 방법을 알게 해 주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인생의 방향을 알게 해주는 길잡이가 되었다.

필사 중인 《명상록》의 마르쿠스 황제처럼 두고두고 회자될 일기는 절대 아니지만, 나에게 있어서 만큼은 마음의 안식처이자 요새인 건 확실하다. 적을 만날 때마다 요새에 숨어들어 반격할 기회를 노린다. 반격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언제든 재정비해서 나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큰 무기다. 그 무기를 아이들에게도 쥐여주고 싶다. 늘 그래왔듯 앞으로도 일기를 쓰면서 마음과 생각을 정리해 갈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당신이 반복적으로 하는 일, 그것이 당신이다."

꾸준히 해 오고, 반복하는 것에 내가 있다. 씀으로써 '나'라는 성벽을 견고하게 만든다.

     


© marcospradobr, 출처 Unsplash


읽기만 하면 뭔가 안 한 것처럼 찝찝하다. 쓰기만 하면 내가 고갈되는 것 같다. 독서와 글쓰기의 균형도 중요하다. 글을 쓰기 시작한 후부터 독서에도 변화가 생겼다. 한 권을 읽어도 천천히 음미하며 읽는 재미를 알아갔다.      


니체의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를 읽는데 이런 문장이 나왔다. 

“이른 아침, 또는 한밤중에 모든 것이 상쾌해졌을 때 자신의 힘이 저 차가운 본능 속에 숨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넘기는 것. 나는 이것을 죄악이라 부른다.”

니체는 단순히 독서에 열중하고 책장을 넘기는 데 만족하는 사람을 비판한다.

자고 일어난 후 가장 머리가 맑다. 그때 독서를 하는 것보다 글을 더 쓰고 싶었다. 어떤 훌륭한 글이어도 단순히 남의 지식과 통찰을 내게 주입하는 것보다 내 글을 더 쓰고 싶어졌다. 그 이유가 내 속에 잠들어 있는 무언가를 깨우고 끄집어내고 싶어서였구나를 이 문장을 통해 알게 되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나에게서 생겨날 씨앗이라면 언젠가 발아도 한다. 씨앗이라는 단어와 동시에 발아라는 단어도 떠올랐다. 발아는 씨앗 속에 들어있는 식물이 성장을 시작하는 시점을 뜻한다. 보고 읽고 듣는 모든 게 쓰기로 발아하면 좋겠다. 재밌는 책도, 읽고 싶은 책도, 읽고 있는 책도 여러 권이다. 꼭꼭 씹어서 다 소화시키고 싶다. 그러려면 쓰기도 병행되어야 한다. 한 줄이라도 쓴다. 쓰는 것만 남는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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