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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Jun 27. 2024

앞으로 살아갈 시간은 짧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0권 15.

네가 앞으로 살아갈 시간은 짧다. 산 위에서 사는 것처럼 살아가라. 사람이 우주라는 국가의 시민으로 살아가기만 한다면, 그 사람은 여기에서 살든 저기에서 살든, 그가 살아가는 장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0권 15 중에서



저녁을 다 먹고 곧바로 치우지 않았다.

남편은 방에서 일을, 선우와 윤우는 퍼즐을, 은서는 맞은편에 앉아 레고와 놀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기분이 울적해졌다.

생각해 보면 갑자기는 아니었다.

찝찝한 무언가가 저녁 내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걸 곱씹다가 내 기분을  잠식해 버린 것이다.


후다닥 저녁 설거지부터 해놓고 집 앞 편의점에 갔다.

친구와 짧은 통화를 나누고 편의점에서 사 온 커피 두 개를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10년 전, 결혼식 부케를 받은 친구가 올해 결혼한다.

그리고 10년째 계모임을 이어오는 친구 한 명도 같은 달에 결혼식을 올린다.


어려서는 20-30대 어른들이 굉장히 커 보였다.

어린이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살고 있는 신비한 존재였다.

막상 그 나이대를 지나와 보니, 그렇지 않다.

나는 그대로 나이고, 이전의 나와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지만 시간이 주는 삶의 지혜는 있다.

살아보니 그렇더라, 하는 뭔가 어른스러운 말.


저녁에 울적해진 내 기분과 아이들에게 뾰족해진 내 행동은 미성숙했다.

어른이 되어도, 아이를 셋이나 키우고 있어도 여전히 성숙한 존재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나를 또 괴롭게 했다.

부정적인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했다.

마음 하나 바꾸면 쉬워질 일인데, 그게 쉽지 않다.


결혼을 준비하는 두 친구가 같은 달인데도 너무 다른 모습이다.

한 명은 시간이 없다 여기며 바쁘게, 이것저것 비교하며 야무지고 알뜰하게 준비를 해 간다.

한 명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여유롭게 준비해 가고 있다.

둘의 과정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론 식도 잘 끝날 것이고, 행복하게 잘 살 것 같다.

결혼 준비 중인 친구들을 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내 결혼생활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삶이란 태어나고 죽는다는 사실만 같을 뿐 살아가는 과정은 다 다르다.

그 과정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결국 나 자신이, 내 마음이 결정하는 거구나를 결혼 생활을 통해 배워간다.

어쩌면 눈 감는 날까지 미성숙한 인간으로 살아갈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어제의 나보다는 조금 나은 사람으로 살다 갈 것이라는 확신이다.

그러니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비슷한 듯 보여도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가 살아갈 시간은 짧다.

앞으로는 내게 남은 시간을 보이는 물체가 아닌 보이지 않는 정신에 욕심내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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