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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Jul 04. 2024

우리는 저마다 인생의 한 시절을 적응해 가며 살아간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0권 22.

너는 여기에 적응해서 살아가거나, 여기가 싫어서 네가 원하는 곳으로 가서 살거나, 죽음을 선택해서 너의 복무를 마치거나 해야 한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그러므로 힘을 내라.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0권 22.



‘모나지 않고 둥근 돌’

10여 년 전, 이력서 자기소개서에 나의 장점을 이렇게 썼었다.

어디에서나 잘 적응하고 동화된다는 것을 어필하고자 했다.

실제로 그러하다고도 믿었고, 지금도 그렇다.

직장 생활을 하지 않은지 10년이 넘었다.

이 세월 동안 나는 세 아이 엄마가 되었고, 초등학생 학부모가 되었고, 전공과 무관한 작가가 되었다.

친구들의 직장 생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일을 잠시 하고 있지 않던 시기에 결혼을 했고, 곧바로 연년생으로 아들 둘을 낳았다.

처음 해 보는 육아로 정신없고 몸은 고되었지만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없었다.

아이 앞에서는 온전히 나일 수 있었다.


결혼과 육아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이다.

이전 삶과 다른 큰 변화를 맞이한다.

낯섦과 이질감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감정에 사춘기 소녀처럼 내면에서 큰 방황을 했었다.

적응하고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시기 또한 잘 지나온 걸 보면 나는 어디서나 잘 적응하고 동화되는 사람이 맞다.


올해 처음으로 매미 소리를 들었다.

한여름을 알리는 우렁찬 소리다.

매년 역대급 무더위, 장마, 폭우 같은 말이 들려오지만 올해도 무더운 날씨에 적응해 가며 살아갈 것이다.

열어둔 창문 사이로 바깥의 더운 바람이 들어온다.

선풍기 바람과 만나니 시원하다.

남편과 아들들은 직장으로 학교로 모두 가고, 네 살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종알종알 말 붙이고, 같이 뭘 하자하고, 배고프다 하는 통에 심심할 틈이 없다.

곁에 아이가 없는 시간도 적응할 날이 머지않았다.

조용할지, 고요할지, 적막할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도 또 적응해 갈 테다.

우리는 저마다 인생의 어느 한 시절을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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