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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현진 Jul 13. 2024

스며드는 것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0권 31.

너는 네가 꼭 배워야 할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려고 하는 것이냐. 왜냐하면 너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은 너의 이성을 훈련시켜서 자연의 이치를 따라 인생의 모든 분야를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한 재료들이기 때문이다.


-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0권 31 중에서



마트에 갔다.

행사 상품으로 간장게장을 팔고 있었다.

나는 비린 맛 때문에 간장게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며칠 전 읽은 시로 인해 더더욱 먹기 힘들어졌다.

자기 전 우연히 보게 된 시였는데, 시가 끝났을 땐 헙 하는 소리와 함께 눈물이 떨어졌다.

세상에, 간장게장이 이렇게 슬픈 존재였다니.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에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끄고 잘 시간이다



새끼를 품고 있는 엄마 게의 마음이 어땠을까.

나를 낳아준 엄마 생각도 나고, 자고 있는 아이들 생각도 났다.

그리고 이 글을 쓴 시인은 도대체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까 궁금하기도 했다.

늦게 한글을 배운 할머니들의 시는 무심하게 감정선을 툭 건드린다.

한 편의 시 안에 할머니가 살아온 세월이 보이고, 시대가 느껴지고, 슬픔이 묻어난다.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알게 된 세상, 경험하고 싶지 않았지만 일어난 일들.

모두 인생을 알게 해주는 재료들이다.

기쁘고, 슬프고, 애달프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괴로워하고, 행복하고… 이 모든 감정을 안고 세상에 스며들어 살아가는 것이 곧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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