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선택권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1권 36.

by 안현진

에픽테토스의 말을 들어보라 : “그 어떤 도둑도 우리의 선택권을 빼앗아가지는 못한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1권 36.



남편이 나에게 자유를 주고 떠났다.

자전거 트레일러에 은서를 태우고 갔다.

처음부터 둘이 갈 생각이었는데 넌지시 “같이 갈래?” 물어봤었다.

같이 가는 것도 혼자 남는 것도 좋았지만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1층에서 트레일러를 설치하고 가는 것까지 보고 올라왔다.

떠나기 전과 똑같이 거실 책상에 앉았다.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면 이걸 할까 저걸 할까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우선 켜 놓은 화면부터 바라봤다.

빈 화면만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뭐 하나, 다른 걸 하자.

책을 읽을까, 어젯밤 보던 영화를 마저 볼까, 찜해놓은 드라마를 볼까, 앞으로 할 일들을 정리해 볼까, 안 써져도 억지로 몇 자라도 써 볼까 ….


자연드림과 서점에 갔다 온다던 남편은 생각보다 금세 돌아왔다.

재밌었다는 은서는 서점에서 사 온 새 수학 책을 펼치곤 혼자 끄적여본다.

남편은 자전거 정비를 하고, 나는 똑같은 자리에 다시 앉았다.

각자 일에 집중하느라 말이 없어지고 조용해졌다.

이 시간도 짧게 지나갔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과 10분쯤 되는 시간 사이에 큰 차이는 없었다.

아이들이 있을 때와 혼자만 있을 때 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안 써지는 글이 혼자 있으면 잘 써질 것 같아도 그 반대다.

막상 혼자가 되면 일탈하는 기분으로 할 일을 살짝 미루기도 한다.

정작 글은 일상생활하는 틈틈이, 가족의 생활 소음과 뒤섞인 상태에서 완성할 때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혼자만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원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한다.

하는 일은 비슷해도 시간의 선택권을 내가 쥐고 있다는 게 좋고, 고요한 상태가 좋다.


아이들과 묶여 있던 시간이 점점 분리되다가 완전히 분리될 날이 올 것이다.

그때는 오늘과 같은 날들이 몹시 그립고 생각날 테다.

내 선택권 안의 시간을 유용하게 쓸 수 있어야 혼자 있을 때의 시간도 잘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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