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2권 22.
모든 것은 너의 생각 속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고, 네게는 너의 판단을 주관하고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네가 원할 때마다 너의 판단을 중지하라. 그러면 거센 물살이 이는 곳을 지나서 파도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잔잔한 바다로 접어든 것 같은 놀라운 고요를 맛보게 될 것이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2권 22.
남편과 크게 싸웠다.
부부 싸움에서 '크게'에는 언성이 높아짐과 눈물이 포함되어 있다.
전날 자기 전에 시작된 일이 오후에 뻥 터졌다.
목소리가 커지고 누그러지고 다시 커지고 누그러지는 과정에서 얼마나 큰 에너지 소모가 되었는지 전화를 끊은 후 으슬으슬 춥고 머리가 아팠다.
엄마, 아빠의 다툼을 지켜보는 아이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오늘 문장을 먼저 봤다면 상황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앞서 판단하고 오해하는 일을 멈추고 물어볼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혼자 기분 상하고 추스르다 폭발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폭발하는 에너지를 화에 내던지고 나니 기운이 쑥 빠진다.
다툼 뒤에 찾아오는 고요함은 쓰라리다.
이러한 고요함이 부정적인 에너지를 다 쏟은 뒤에 찾아오는 게 아니라 가라앉힌 뒤 느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 자책, 반성, 부끄러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매트 온도를 최고로 올린 뒤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아이들이 하나 둘 찾아오더니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조곤조곤 제 생각을 얘기하는 선우와 애교쟁이 윤우와 깔깔깔 웃는 은서를 보는데 엄마로서 내가 참 못나 보였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에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너희는 엄마가 어때?"
"젊어."
"예뻐."
올라가는 입꼬리를 참으며 다시 물었다.
"아니, 엄마 기분 좋으라고 말하지 말고 엄마는 어떤 사람 같아?"
"음... 머리가 구불구불하고... 키가 크고... 대학생 같아. 키 큰 대학생 같아!"
진지한 큰아들 말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래, 고맙다.
오늘은 엄마랑 자면 안 되냐고 해서 알겠다 하니 어느새 침대에 넷이 다 모였다.
같이 사진도 찍고 웃고 놀다가 아까 못한 설거지를 하러 나왔다.
물 마시러 따라 나온 윤우가 말했다.
"같이 사진 찍고, 놀고 하니까 소풍 가는 거처럼 재밌고 좋았어."
윤우가 한 말은 이보다 더 따뜻하고 감동적이었는데 잊어버렸다.
사진 찍고 노는 게 뭐라고.
엄마 아빠 다툰 뒤에 찾아온 웃음이라 그랬을까, 평소에 이런 시간을 못 가질 만큼 내가 여유가 없었던가, 아이들은 큰걸 바라는 게 아닌데 나는 되려 아이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던 건 아닌가… 그 짧은 순간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그랬어? 그랬구나." 밖에 하지 못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나도 수도자의 마음처럼 잔잔하고 고요했으면 좋겠다,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을 만큼 깊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흘러가는 사람이고 싶다.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되려면 내가 원할 때마다 나의 판단을 중지하라고 오늘 문장에서 말한다.
어제와 오늘의 나는 그러질 못했다.
나의 판단을 주관하고 다스릴 수 있는 힘이 내게 있었음에도 못했기에 '잔잔한 바다로 접어든 것 같은 놀라운 고요'에 갈 수 없었다.
거센 물살이 이는 곳을 건너지 못하고 빠져 버린 셈이다.
오늘의 교훈은 '다음에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얼른 《명상록》을 펼쳐 아무 곳이나 읽어보자.'이다.
'잔잔한 바다로 접어든 것 같은 놀라운 고요'는 책 속에서도 맛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