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좀비가 된다면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2권 33.

by 안현진

너의 지배적 이성이 자신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모든 것이 거기에 달려 있다. 다른 모든 일들은 네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든 선택할 수 없는 일이든 단지 죽어 있는 시체이고 금세 사라져 버릴 연기일 뿐이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2권 33.



“죽어 있는데 살아 있는 것은?”

선우가 문제를 냈다.

이것저것 던져 봤는데 다 틀렸다.

정답은 좀비였다.

“그런데 선우야… 좀비가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나?”

“죽었는데 움직이니까 살아있는 거지~”

“만약에… 엄마, 아빠가 좀비가 돼서 선우가 누군지도 다 잊어버리고… 같이 좀비 되자고 쫓아오면 어떻게 할 거야?”

난감한 질문이라는 듯,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답변을 거부한다.

옆에 있던 은서에게 물었다.

“은서야, 엄마 아빠가 좀비 되면 어떻게 할 거야?”

“좀비 된 것만 없애고 엄마, 아빠는 없애지 않을 거야. 총가게에서 총을 사고 건전지를 넣고 눌러서 천천히 총을 싸고 좀비 없애는 버튼을 누르고 엄마 아빠 없애는 건 안되고 엄마 아빠 좀비 돼서 죽는 건 안되고 책도 주고 지도 만든 것도 주고 그림 그린 것도 주고 웃긴 거 주고 그냥… 그렇게 하면 되잖아.”

오빠들 덕분에(?) 좀비를 잘 아는 네 살 딸의 답변이었다.

순수함과 웃김과 감동이 버무려진 답변이라 놀랐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딸을 보며 미소 지었더니 따라 웃는다.


좀비 영화를 보면서 한 번씩 생각해 본다.

내가 만약 좀비가 된다면, 사랑하는 가족이 만약 좀비가 되었다면 ….

그들을 원래대로 돌려놓지 못한다면 같아지는 선택을 할 것 같다.

반대로 내가 나를 완전히 잊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 선택을 할 것 같다.

좀비는 이성이 없다.

오직 식욕만 느끼며 걸어 다닐 뿐이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사랑하는 이가 누구인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은 생각하는 이성과 감정을 느끼는 마음에 있다.

이 두 가지를 지닌 내게 가장 반짝하는 순간도 두 가지가 될 것 같다.

내가 어린 자녀였을 때와 어린 자녀를 키우는 지금 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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