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날아갈 것만 같은 아이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2권 34.

by 안현진

쾌락을 선으로 여기고 고통을 악으로 여긴 자들조차도 죽음을 하찮은 것으로 생각했다는 사실은 죽음이 정말 하찮은 것임을 여실히 깨닫게 해 준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2권 34.



《죽이고 싶은 아이 2》를 읽었다.

1편은 첫아이 입학 통지서를 받을 즈음 읽었었는데 최근에 다시 읽게 되었다.

두 번째 읽는 건데도 이야기에 빨려 드는 몰입감과 끝에 어떻게 됐더라… 하는 궁금증에 단숨에 읽어버린 책이다.

이번에 2권이 나왔다는 걸 알고 반가운 마음으로 구매했지만 한동안 덮어만 두었었다.

캐릭터가 생생해서일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그럴까.

인물에 대한 아픔과 안타까움이 생생하게 전달된 책이어서 읽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었다.

오늘에서야 다시 펼쳤다.

그리고 1권처럼 단숨에 읽었다.


주인공 주연은 가장 친한 친구를 잃고 살인의 누명을 쓴 채 방송과 사람들로부터 온갖 질타를 받는 고등학생이다.

진범은 잡혔지만 주연을 따라다니는 소문과 손가락질은 여전하다.

부모님조차도 주연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었는데 2권에선 어떻게 주연과 주연의 가정이 무너져가는지 또 회복해 가는지를 보여준다.

며칠 전, 최민준 소장의 짧은 영상을 봤었다.

세 살 단위로 끊었을 때, 열두 살이면 이제 놔줘야 하는 시기라고 했다.

12~18세를 자립 준비 시기라 보고, 21살에는 날아가야 한다.

그러니 배웠든 못 배웠든 아이들은 날아갈 준비를 한다.

부모가 가르치든 안 가르치든 결국 날아가므로 12세 이전에 중요한 걸 최대한 깔아줘야 한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듯한 그래프를 보는데 울컥했다.

열 살, 아홉 살 아들들이 곧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전에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걸 최대한 가르쳐 줘야겠구나,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덕목을 품고 갈 수 있게 해야겠다 생각했다.


《죽이고 싶은 아이》에서 주연이 안타까웠던 것은 부모의 사랑과 관심의 부재였다.

주연의 부모는 자신의 방식으로 아이를 사랑해 왔고, 그게 옳다 믿고 있었다.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읽으면 자연스레 우리 아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 가정은 어떠한지,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인지, 사춘기가 되면 어떠할지, 지금 놓치고 있는 부분이 뭔지….

곧 자립의 시기로 들어서는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1순위는 언제나 사랑과 관심이다.

시기마다 표현방식은 달라지겠지만 이 마음만큼은 늘 밑바탕에 깔고 간다.


죽고 싶은 마음 대신 평범한 하루를 조금씩 되찾아가는 책 속 인물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아기가 웃어 주면 이 아기가 와 줘서 고맙다, 싶거든. 그러고는 다 잊어버려. 이 아이를 낳느라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무서웠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전부 다 잊는 거야. 너희 엄마도 마찬가지일 거야. 그러니까 엄마한테 부족한 딸일까 봐 걱정할 필요 없어.”

맞다.

아이들은 단 한 번도 부족한 적 없었다.

그 자체로 충분한 존재다.

책에서 고개를 드니 현실 속 내 자식들이 뒤엉켜 놀고 싸우고 웃는다.

종종 버럭 소리 지르는 엄마지만 이것이 현실 속 행복임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가 만약 좀비가 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