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떤 계절을 보내고 있나요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2권 35.

by 안현진

때를 따라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들만이 선하다고 여기는 사람, 참되고 바른 이성을 따라 행할 수 있기만 하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든 적게 주어지든 상관하지 않고 만족하는 사람, 이 세상을 좀 더 오래 보게 되거나 좀 더 짧게 보게 되는 것에 연연해하지 않는 사람에게 죽음은 두려움이나 공포를 줄 수 없다.


-《명상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_제12권 35.



한 주를 되돌아보니 꽤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학교 학예회를 공개적으로 진행했다.

유치원생부터 3학년까지 함께 오전 무대를 꾸몄다.

내년엔 저 무대 위에 은서도 있을 거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교실로 가서 복도에 전시된 아이들 작품도 보고 돌아왔다.


남편과 나는 긴장되는 발표를 각자 같은 날 다른 장소에서 했다.

남편 대신 친정엄마가 와서 은서를 봐주셨다.

덕분에 마지막 수업도 발표도 잘 끝낼 수 있었다.

그 길로 엄마 차를 타고 친정으로 가 주말을 보내고 돌아왔다.


남편은 강의, 자전거대회, 근무, 강의 리허설로 하루하루 빡빡한 일정을 보내고 있다.

남편을 못 본 지 4일째 되는 날, 우린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나는 은서와 오후에 유치원에 갔다 왔다.

선생님도 만나고 내년 입학 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왔다.

학교 운동장과 놀이터 주변으로 알록달록하게 단풍잎이 물들었다.

가을이 늦게 오더니 단풍도 늦게 온다.

11월 중순, 가을의 절정을 맞보고 있다.

내년이면 두 아들은 초등학교 중학년에 들어서고, 막내도 유치원에 다닐 생각 하니 모든 게 빠르게 느껴진다.


아이들을 보면 한참 피어나는 봄 같다.

새싹이 돋고 봉오리를 맺는 푸르른 존재.

그런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나는 울창한 나무들로 빼곡한 한여름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

자연에 때가 있듯이 사람에게도 때가 있다.

이상기후 영향이지만 늦더라도 가을은 오고, 늦더라도 단풍은 물들고, 늦더라도 잎이 모두 떨어진 뒤 겨울이 찾아온다.

언제고 여름은 가고, 가을이 온다.

짧든 늦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고, 봄이 온다.

내게 봄은 지나갔고 한여름도 지나갈 것이다.


조금만 쌀랑해져도 손이 갈라지고 얼굴이 조이는 건성 피부지만 겨울을 좋아한다.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추위 안에서도 따뜻함이 있고, 따뜻함을 찾을 때의 행복한 기분이 좋아서다.

그러니 내가 보내고 있는 계절 안에서도 언제나 행복과 즐거움이 있고 그걸 꼭 쥐고 살아가려 한다.

'이렇게 눈부신 여름을 만끽하다가 가을처럼 멋지게 무르익고, 겨울처럼 따뜻하게 나이 든 사람이면 좋겠다.'

늦은 단풍 아래에서 봄 같은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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