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이 싫은 이유

《논어》, 공자_제1편 학이(學而) 12.

by 안현진

유자가 말하였다. “예의 기능 중에는 화합이 중요하다. 옛 왕들의 도는 이것을 아름답다고 여겨서, 작고 큰 일들에서 모두 이러한 이치를 따랐다. 그렇게 해도 세상에서 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화합을 이루는 것이 좋은 줄 알고 화합을 이루되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또한 세상에서 통하지 못하는 것이다.”


-《논어》, 공자_제1편 학이(學而) 12.



좋은 게 좋은 줄 알았다.

좋은 게 좋으려면 누군가의 희생이 따라야 함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자신의 생각을 굽히고, 체념을 정당화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를 희생함으로써 괜한 분쟁을 만들지 않겠다는 마음도 포함된다.


그땐 몰랐다.

내게는 즐거운 추억으로 남은 일이 누군가에겐 희생이었다는 것을.

며느리, 아내, 엄마, 외숙모, 올케… 결혼을 함으로써 부여되는 역할 안에서 나는 유년 시절을 계속 되돌아보았다.

지금까지도 좋은 사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어른들께 그저 감사했다.

어른들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만큼 어린 나이였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 그들이 내게 무엇을 내어줬는지가 보였다.

나는 그런 사랑과 배려를 받고 자랐으면서도 왜 나는 그대로 하지 못할까.

이런 생각은 여전히 나를 괴롭힌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기엔 내가 나를 외면하는 것 같고,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에 화들짝 놀란다.

싫다는 의사 표현이라도 하지 않으면 뻥 터질 것만 같았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 나를 찌르기보다 미움받더라도 나를 지키고 싶었다.

이리저리 깎아내어 끼워 맞추지 않고, 나라는 형체를 보존하는 쪽을 택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이 싫어졌다.

나에게는 좋은 것이 누군가에겐 안 좋은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결혼한 사람은 어른이라고 어른 대접을 해준다고 했었다.

이 말속에는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역할을 맡게 되고, 그들의 입장을 헤아려 보게 된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닌데도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어떤 역할에 붙들고 있는 건 아닌지, 그들의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건 아닌지, 싫어하는 모습이 누군가에겐 나인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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