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공자_제3편 팔일(八佾) 8.
자하가 여쭈었다. "'고운 웃음에 보조개가 아름답고, 아름다운 눈에 눈동자가 또렷하니, 흰 바탕에 무늬를 더하였네'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이 있은 다음이라는 것이다."
자하가 말하였다. "예는 나중 일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일으켜주는 자는 상이로구나! 비로소 자네와 함께 시를 말할 수 있게 되었구나."
-《논어》, 공자_제3편 팔일(八佾) 8.
아들 육아 전문가인 최민준 작가가 말했었다.
아이들은 하얀 도화지로 태어나는 게 아니다.
저마다 희미하게 그려진 밑그림을 가진 채 태어난다.
이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놀랐다.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도화지로 태어나기에 무엇을 그리냐에 따라 변하고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저마다 성향, 기질이라는 밑그림을 가진 채 태어난다.
아이는 부모가 원하는 대로, 그리고자 하는 대로 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부모는 아이가 밑그림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그림을 스스로 그려나갈 수 있도록 도우는 조력자일 뿐이다.
아이가 가진 고유한 반짝임을 죽이거나 깎아내지 않고 최대한 살려주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말이었다.
선우는 친구 생일을 잘 챙긴다.
누구 생일이라고 하면 용돈으로 작은 선물과 짧은 편지를 써서 준다.
오늘 아침에도 생일인 친구에게 줄 축구 카드와 사탕, 비타민 같은 간식을 투명 봉투에 넣어 갔다.
친구들을 초대한 생일 파티는 한 번도 열어준 적이 없지만 생일은 축하받는 날, 기분 좋은 날임을 알고 있다.
가족과 보내는 생일 때도 수줍게 "고마워." 말하며 웃는다.
생일을 축하하는 마음을 작은 선물에 담아 전하는 아이를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오늘 뭐 먹었는지 급식 얘기를 하던 날이었다.
윤우가 국밥이 나왔는데 자기 반에 돼지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가 있다고 했다.
그 별명을 붙인 아이가 오늘 00 국밥 나왔다며 친구를 놀렸다고 한다.
그래서 윤우는 어떻게 했냐고 묻자 그러면 안 된다고, 친구가 기분 나쁠 수 있으니 놀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한다.
"오오~ 그랬어?! 근데... 웃으면서 말한 건 아니지?"
장난스레 묻자 진지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 우리 저번에 《우리 반 오징어 만두 김말이》라는 책도 읽었었잖아~ 친구한테 기분 나쁜 별명 지어 부르면 안 되는 거~ 윤우, 멋진데!"
집에서는 장난기 가득한 모습만 보는데 밖에선 잘못된 건 잘못됐다 말하는구나 싶어서 대견했다.
오늘 공자와 자하가 나눈 대화를 필사하면서 아이들을 떠올렸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먼저 흰 바탕이 있은 뒤에 한다.
흰 바탕은 아이 밑바탕에 있는 고운 마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옳고 그름을 알려주는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