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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 안에 담기는 진심

《논어》, 공자_제3편 팔일(八佾) 11.

by 안현진

어떤 사람이 체 제사의 이론에 관해서 질문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모르겠소. 그 뜻을 아는 사람이라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은 이것을 보는 것과 같을 것이오!"라고 하면서 자신의 손바닥을 가리키셨다.


-《논어》, 공자_제3편 팔일(八佾) 11.



공자는 체 제사와 같은 큰 의식을 통해 배우는 질서와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제사의 격식만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삶에서 질서를 세우고 조화를 이루는 법을 배우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형식 안에도 진심을 담을 수 있다.

매일 하는 필사와 글쓰기는 단순히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다듬고 성장시키는 도구다.

나를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행위다.

형식 안에도 진심을 담을 수 있다.


나만의 의미를 담아야 오랫동안 꾸준히 할 수 있다.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수능을 쳤던 날이었다.

수능치고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이 블로그 만들기였다.

블로그를 통해 소소한 내 일상을 기록하는 게 재밌었다.

쓸수록 소중해지고 특별해지는 기분은 일상에서 누리는 작은 행복이었다.

결혼 후에는 개인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을 기록하게 되었다.

내 삶과 엄마로서 나를 돌아보게 하고 깊게 생각하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어 있다.


꿈을 좇던 젊은 시절의 나는 여전히 꿈을 좇는 30대 여성이다.

글쓰기 선생님이라는 또 다른 꿈을 찾고 도전하면서 곳곳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다.

아이들과 함께 읽을 책을 읽고, 교재 연구를 한다.

읽고 좋았던 책은 블로그에 올림으로써 함께 나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그 기분이 좋다.


6시 30분에 일어난 윤우가 영어 듣기를 마치고 내가 있는 공부방으로 왔다.

잠깐 멍하게 앉아 있더니 키보드를 두드리던 내게 말한다.

"엄마, 책이 참 많다. 도서관 해도 될 거 같아."

"오늘 또 책 올거지롱~"

"무슨 책?"

"너희가 읽으면 좋을 만한 책. 엄마가 먼저 읽어보려고."

"아~" 하는 아이에게 조금 전 책 한 권 더 주문한 건 얘기하지 않았다.


형식 자체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수양의 과정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읽고 생각하고 글로 정리하기.

내가 매일 하고 있는 이 행위들도 내게는 수양이었는지 모른다.

이는 나와 가족, 타인과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오늘 문장은 주석에 의하면 '공자가 제사의 예를 통해 인격을 닦고 인간관계의 질서와 절차에 대해 수양하는 것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보여 준다'고 한다.

질서와 절차를 통해 인간관계와 삶을 조화롭게 만드는 과정이 내겐 읽고 쓰는 형식으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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