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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끌어주는 작은 불꽃

《논어》, 공자_제3편 팔일(八佾) 15.

by 안현진

공자께서는 태묘에 들어가 매사를 물으셨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누가 추 땅 사람의 아들이 예를 안다고 하였는가? 태묘에 들어가 매사를 묻더라."

공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바로 예이다."


-《논어》, 공자_제3편 팔일(八佾) 15.



나이팅게일 선서 후 병원으로 간호실습을 나갔다.

학교에서 배운 이론을 병원에서 실전으로 배우는 시간이었다.

대학병원 정형외과 병동을 처음으로 마지막은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끝났다.

그 사이 대학병원, 종합병원, 서울·부산 타 지역 병원, 보건소, 보건 진료소, 분만실, 신생아실… 다양한 곳에서 실습했었다.

실습 나온 학생에게 먼저 이것저것 알려주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대개는 자기 일만으로도 바빴기에 눈치껏 쫓아다니며 묻고, 할 일을 찾고, 배워야 했다.

보고 배우러 왔는데 시간만 보내다 가기 싫었다.

그래서 실습생이 할 일이 없다 하는 부서에 가서도 묻고 공부할 거리를 찾아다녔다.

긴장과 어려움을 이겨내려는 나름의 극복 법이었다.

묻고 알수록 재밌었고, 시간도 빨리 지나갔다.

그리고 배우려는 그 모습을 좋게 봐주었다.


학생 때는 모르는 걸 물어볼 용기가 없어 넘어가다 보니 공부 기초가 부실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려운 걸 배우는데 기초가 부실하니 성적을 끌어올리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특히 수학이 그랬다.

하지만 간호 공부에 있어서는 그러기가 싫었다.

그럴 수도 없었다.

나의 무지로 환자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기에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가 느리고 몸이 느렸을 뿐 마음은 늘 앞서갔었다.

신규 간호사 때는 실습생 때와는 다르게 곧바로 실전이다.

내가 책임간호사가 되어 환자를 보기 전, 프리셉터 선생님에게 배우는 기간이 있었다.

일하면서 배운 것 외에도 공부해야 할 게 산더미였다.

잠자는 시간을 줄여도 부족했기에 공부량이 나에겐 태산같이 느껴졌다.

과부하에 걸려 프리셉터 선생님이 외워오라 했던 약물도 다 못 외워가고, 내준 과제도 부족하게 해 왔다고 날마다 혼났다.

불성실하고 공부 안 하는 간호사라고 했을 때는 억울했지만 겉으로 보기엔 내가 봐도 그랬다.

왜 마음처럼 머리와 몸이 따라주지 않는 걸까 속상하해 하면서도 계속 공부했다.

호랑이 같았던 프리셉터 선생님이 무섭긴 해도 밉지 않았다.

답답해하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았고, 혼자가 되었을 땐 더욱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립해서 환자를 볼 때는 내가 모른다는 것이 무서워 동료 선생님들에게 더 묻고 공부했다.

데이 근무인데 나이트 번 근무자를 만나기도 하고, 나이트 근무였는데 이브닝 근무자를 만날 때도 있었다.

간호사실 컴퓨터로 환자 병력과 모르는 단어들을 적고 공부하다 퇴근했다가 출근했다.

그때 몇 번 노트를 깜빡하고 두고 온 적이 있었는데 프리셉터 선생님에게 늘 부족하다 꾸중 들었던 과제 정리, 약물 정리 노트가 병동에선 모범 간호사로 알려지게 만들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태묘(천자나 제후가 조상을 모시는 곳)에서 매사(예식의 모든 절차와 내용)를 물은 공자를 폄하하고 비웃었다.

하지만 공자는 겉모습의 완벽함을 추구하거나 모든 것을 안다는 척하지 않았다.

겸손하게 배우고자 하는 태도와 자신을 낮추는 마음에 예가 있다고 보았다.

오늘 문장을 읽는데 10여 년 전 신규 간호사로 일하던 내가 떠올랐다.

간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일했던 시간은 짧았지만 내 인생에 있어 강렬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때만큼 절실하게 나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있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결혼, 출산, 육아, 글쓰기, 공부방 운영 등 내가 해보지 않은 일에 들어설 때면 신규 간호사 때의 마음을 떠올린다.

그때 심어졌던 작은 불꽃이 그때처럼 할 수 있다고 나를 이끌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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