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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눈빛과 대답으로 채운 시간

《논어》, 공자_제3편 팔일(八佾) 17.

by 안현진

자공이 매월 초하루에 지내는 곡삭제에서 희생으로 양을 바치는 것을 없애려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너는 그 양을 아끼지만 나는 그 예를 아낀다.”


-《논어》, 공자_제3편 팔일(八佾) 17.



“삐약삐약 송아지~”

다섯 살 딸이 쉴 새 없이 말하며 두 아들이 없는 조용한 집을 채우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부른 노래에 웃음이 터졌다.

바른 가사를 가르쳐 주며 “그럴 수 있지.” 했더니, “당연히 그럴 수 있지~” 말한다.

유치원에서 해본 도장 놀이가 생각났는지 도장 놀이하자 하고, 가입학식 때 받은 미술 세트로 같이 색칠하자 하고, 글자 만들기를 하자 한다.

뭘 자꾸 봐달라 하고, 엄마를 계속 부른다.

자전거 손잡이에 테이프를 감고 있던 남편도 웃으며 말한다.

“정말 심심할 틈이 없겠다. 정은서! 엄마를 가만두질 않네~”


하지 말라는 말에도 계속하면서 깔깔깔 웃는 게 엄마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두 오빠에게 단련되었기에 이쯤은 아무렇지 않다.

엄마의 인내력이 많이 높아져 있다는 건 막내가 누리는 복이다.

하지만 미안한 것도 있다.

둘째는 첫째에 비해서, 셋째는 둘째에 비해서 책을 많이 못 읽어준 것 같다.

육아에만 전념하던 때와 다르게 읽고 쓰고 싶은 게 많아 집중도가 떨어졌다.

잠깐만, 이것만 하고 갈게 말하고선 동화책 뽑아 기다리던 아이를 혼자 잠들게 한 날도 많다.

‘와, 잔다!’ 하는 기쁨과 ‘아… 책 못 읽어줬는데….’ 하는 미안함이 동시에 든다.


못 읽고 잔 날에는 다음 날 아침, 어제 책 못 보고 잤다며 입을 삐죽거린다.

때 되면 유치원도 가고, 학교도 간다.

영원히 지금에 머물러 있을 것도 아닌데 알면서도 내려놓는 게 잘 안된다.

나도 책 읽고 싶고, 못다 쓴 글도 쓰고 싶고, 재밌는 영상도 보고 싶다.

그럼에도 내가 하고 싶은 걸 내려두고 아이와 보낸 시간은 우리에게 남아 있다.

아이가 이때를 기억하지 못해도 말이다.


아이를 보는 시간이 ‘양’과 같을 수 있다.

두 아들이 축구교실에서 돌아오자마자 바통터치하듯 막내는 잠들었다.

오빠 언제 오냐고 물으며 집안을 채우던 딸 대신 이젠 아들들이 이것저것 묻고 얘기한다.

못해준 것을 생각하면 미안함과 후회만 남지만 함께 보낸 시간을 기억하는 건 행복함과 그리움을 떠올리게 한다.

바쁨 속에서 아이와 생략하려던 시간을 엄마의 따뜻한 눈빛과 대답으로 채워나가 보면 어떨까.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우리의 관계를 이어주는 작은 예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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