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공자_제3편 팔일(八佾) 19.
정공이 물었다.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예로써 신하를 부리고, 신하는 충으로써 임금을 섬겨야 합니다."
-《논어》, 공자_제3편 팔일(八佾) 19.
《논어》를 필사한 지 59일 차다.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공자님이 진심을 다하는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알게 되었다.
문장에서 말하는 충(忠)은 임금에 대한 복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글자 그대로 中과 心이 합쳐진 한가운데의 마음, 성심성의를 다하는 진실된 마음을 의미한다.
글쓰기 공부방을 열고 첫 수업을 했던 날이었다.
첫 수업, 첫 제자는 처음이기에 갖는 마음이 남다르다.
떨리고 긴장하며 준비했던 수업을 잘 마쳐서 행복했다.
이 마음이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었는지 그날 선우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엄마가 많이 행복해서 좋았다.'
수업은 하면 할수록 점점 익숙해질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만큼은 익숙해지지 말자고 생각했다.
임금과 신하 자리에 선생과 학생을 넣어도, 부모와 자식을 넣어도 같은 의미가 된다.
떨리는 마음으로 수업에 갔지만 막상 수업이 시작되면 재밌고, 끝날 때는 일주일 뒤 수업을 기다렸던 25년 전의 어린 나처럼 아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책 읽기와 글쓰기가 조금씩 즐거워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 마음만큼은 초심처럼 늘 붙들고 있자 되뇐다.
'성심성의를 다하는 진실된 마음'을 잊지 말자고 필사하며 꾹꾹 눌러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