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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좋은 이유

《논어》, 공자_제3편 팔일(八佾) 20.

by 안현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경』의 「관저」는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다."


-《논어》, 공자_제3편 팔일(八佾) 20.



육지가 저기 보이는데 나는 무인도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넌 왜 우리랑 다르냐고 미운 아기 오리처럼 외면받는 것 같았다.

무엇에라도 기대고 싶은 나날이었다.

그때 시가 어깨를 내주었다.


한 번 뚫고 들어가기 시작한 우울은 계속 지하로 내려갔다.

더는 내려가지 않아야 했다.

어떻게든 지상으로 올라가야겠다는 마음에 기분 좋아질 만한 것들을 찾았다.

그때 우연히 어느 시인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내 마음이 딱 저런데…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마음을 시인은 정확한 언어로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네가 틀리고 잘못된 게 아니야. 그저 다를 뿐이야.

그 자체로 크게 위로받았다.


그때 이후로 시를 읽기 시작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시가 좋았다.

독특하고 난해하고 어려운 문장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생각하며 흘러가는 순간이 좋았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연 사이 여백에도 시인의 고뇌와 수많은 시간이 녹아있다.

무엇이 감정을 건드리고 움직이는 걸까.

침대 머리맡에는 한강의 시집 한 권이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마음을 시집 안에 넣어두고 나온다.

다음번에 다시 펼쳤을 땐 그때 넣어둔 마음이 시집 어디에선가 가지런히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을 위로하고 어루만져 주는 것은 사람의 손끝에서 나온다는 것을 시를 통해 느낀다.


시는 글자로 된 또 다른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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