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공자_제3편 팔일(八佾) 22.
"그러면 관중은 예를 알았습니까?"
"나라의 임금이라야 병풍으로 문을 가리는 법인데, 관중도 병풍으로 문을 가렸고, 나라의 임금이라야 두 임금이 함께 연회를 할 때 술잔 놓는 자리를 둘 수 있는 법인데 관중도 또한 술잔을 놓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런데도 관중이 예를 안다면, 누가 예를 모른다고 하겠느냐?"
-《논어》, 공자_제3편 팔일(八佾) 22 중에서
반나절 만에 만난 남편이 나를 보더니 아이들에게 묻는다.
"엄마 말 잘 듣고 있었어? 힘들게 안 했어?"
아이들은 몇 초간 말이 없더니 언제 혼이 났고, 왜 혼났는지를 줄줄 얘기한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더 무거웠다.
'화내지 않고 잘 얘기할 수도 있었는데….'
우리 일정의 마지막 장소인 카페에 있으니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 후회, 반성이 밀려왔었다.
음료를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책 읽거나 그림 그리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아이들에게 좀 더 친절하고 상냥한 엄마가 되고 싶다.]
내 눈에는 고쳐주고 일러주고 바로잡아줘야 할 행동이 계속 보인다.
식당에서 돌아다니는 거 아니다, 영화 볼 때는 말하면 안 돼, 밥 먹을 때는 천천히 깨끗하게 먹자, 외투 바닥에 닿지 않게 잘 들고 다니자, 서로 기분 상하는 말은 하지 말자….
죄다 안 해야 될 것들이다.
특히 남에게 피해 가는 행동에는 더 주의시킨다.
아이들이 사회에서 예의 있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스스로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다정하고 상냥한 엄마가 되고 싶지만, 매일 그러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내 마음만큼은 분명하다.
이 마음이 좋은 언어와 행동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오늘도 조금 더 노력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