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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의 자로

《논어》, 공자_제5편 공야장(公冶長) 6.

by 안현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道)가 행해지지 않아 뗏목을 타고 바다로 떠나가면, 나를 따라올 사람은 바로 자로일 것이다."

자로가 이 말을 듣고 기뻐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로는 용맹을 좋아하는 것은 나보다 더하지만, 사리를 잘 헤아려 보지 못한다."


-《논어》, 공자_제5편 공야장(公冶長) 6.



둘째가 외투 속으로 뭔가 숨겨 나간다.

"그거 뭐야?"

"아무것도 아니야~" 하며 슬쩍 바깥에 내려놓고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장난감인가? 축구 카드인가? 나가봤더니 방문 옆에 읽다 만 책이 놓여 있다.

"…… 로봇 과학 가서 책 읽을 생각이었어?!"

어제 자정이 다 되도록 로봇 만들고 자더니, 오늘은 수업 가서 책을 읽는다고?

아이 마음이 읽히자 인상이 찡그려졌다.


작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윤우는 축구 방과 후 수업을, 선우는 로봇 과학 방과 후 수업을 각각 시작했었다.

둘 다 원해서 시작한 수업이라 한 학기 동안 재밌게 배웠다.

그래서인지 선우는 축구를, 윤우는 로봇 과학을 해보고 싶어 해서 둘 다 두 가지 수업을 듣는다.

윤우도 로봇 과학을 재밌어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보내는 게 맞을지 고민되었다.

가서 만든 것을 풀고만 왔다거나 친구랑 얘기하며 놀았다는 말을 선우에게 자주 들어서다.


최근 많이 가까워진 친구도 로봇 과학을 하는데 마치고 그 친구와 놀 거라고 했다.

오늘 할 일은 빨리해야겠고, 그러니 책을 챙겨 가는 것이었다.

자기 전에 만든 로봇을 수업 가서 프로그래밍 넣고 그 시간에 책 보고 친구랑 논다는 생각이 들자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럼 로봇 과학 수업은 왜 가는 건데?! 온통 친구랑 놀 생각뿐이구나!"

약속도 여러 번 어겨서 무조건 할 거 다 하고 놀러 가라고 했더니 이런 꾀를 낸 것이다.

남편은 태연하게 괜찮다고만 한다.

내가 상황을 이렇게 만든 것인지,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일에 예민하게 구는 건지, 이것도 아들을 잘 이해 못 하는 엄마 심리인 건지… 답답한 아침이다.


선우도 친구를 좋아하지만 자기 생활의 균형이 잡혀 있다.

윤우는 할 것만 딱 다 해놓으면 나머지 시간은 온통 친구와 노는데 쏟는다.

이상한 말투, 처음 듣는 기분 나쁜 말을 형, 동생에게 써서 곧잘 혼난다.

학기 말 즈음에 담임 선생님에게 받은 전화가 더욱 걸렸다.

윤우가 나쁜 행동을 하지는 않는데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다 보니 어떤 일에 잘 휘말리는 것 같다고 말이다.

놀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이 생길 수 있고, 윤우가 욕을 쓰거나 나쁜 행동 할 아이가 아니라고 믿는다.

하지만 확실히 선우에 비해 신경 쓰는 빈도수가 많다.


윤우는 우리 집에서 독보적인 아이다.

하숙생이 한 명 산다고 웃기도 하고, 나중에 뒷심을 발휘할 아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아이기도 하다.

친구를 좋아하고, 어울리는 걸 즐기고, 가는 곳마다 금방 친해지는 건 윤우의 장점이다.

내게 없는 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부러울 때가 많다.

하지만 다소 즉흥적이고, 순간의 즐거움을 우선해서 신중함이 부족해 보일 때도 있다.

오늘처럼 로봇 과학 수업을 가면서 책을 숨겨 가려했던 것처럼 말이다.


공자는 자로의 용맹함을 인정하면서도 신중함이 부족하다고 짚었다.

나도 윤우가 가진 장점을 인정하되 자기 할 일은 더 신중하게 챙기는 법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당장은 속 터질 때가 많지만 어떻게 성장할지 모르는 일이다.

내 역할은 그저 옆에서 지켜보며 적절하게 균형을 잡아 주는 것이 아닐까.

아들을 키워가며 이렇게 또 하나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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