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공자_제6편 옹야(雍也) 12.
자유가 무성의 읍재가 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인재를 얻었느냐?”
“담대멸명이라는 자가 있는데, 그는 길을 갈 때 지름길로 가지 않고, 공적인 일이 아니고는 저의 집에 찾아온 적이 없습니다.”
-《논어》, 공자_제6편 옹야(雍也) 12.
4월이 되었다.
새 학기 적응 기간은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끝났다.
막내를 유치원에 보내놓고 돌아오면 텅 빈 집이 나를 맞았다.
방금 전까지 이것저것 얘기하며 온 집안을 채우던 딸이 없다.
먼 곳으로 대학 보낸 것도 아닌데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아 적막하고 쓸쓸했다.
이 감정이 가시자 조급함이 찾아왔다.
아이들과 24시간 붙어 지내는 와중에도 내 시간을 갖고자 그토록 애썼는데, 이제는 공식적으로 나만의 시간이 턱 주어졌다.
그러니 이 시간을 어찌 그냥 흘려보낼 수 있겠는가.
처음에는 이것도 해야 하는데, 저것도 해야 하는데 하면서 우왕좌왕했었다.
어느 순간 세 아이가 없는 온전한 오전 시간을 잘 쓸 수 있게 되었다.
은서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아이가 곁에 없었던 적이 없다.
셋째가 태어나던 해에 첫째, 둘째가 처음으로 유치원에 갔다.
그때가 일곱 살, 여섯 살이었다.
막내가 다섯 살이 되는 동안 연년생 아들 둘은 초등학생이 되었다.
자신들이 다녔던 병설 유치원에 은서가 다니자 무척이나 부러워한다.
유치원 때로 가고 싶다고, 너무 재밌었다고 추억한다.
남편이 첫째와 자전거를 타러 가려고 챙기고 있었다.
헬멧 끈을 조절한다고 아빠 앞에 서 있던 선우를 보는데 머리가 남편 가슴까지 쑥 올라와 있다.
남편도 선우 안장을 높여주면서 키가 컸구나 느꼈다고 한다.
3월부터 반팔, 반바지를 꺼내 입던 둘째는 팔다리가 길쭉해졌다.
학교에서 신체검사를 했는데 키를 듣고 놀랐다.
나랑 벌써 30cm 밖에 차이 안 나다니.
은서처럼 무릎을 숙여야 눈높이가 맞춰질 때가 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컸나.
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작아질 날이 머지않아 오겠구나 싶으니 또 눈물샘 발동이다.
사춘기와 갱년기가 함께 맞물리지 않고, 아이들 한 명 한 명 사춘기를 힘껏 껴안아 낸 뒤 천천히 나의 갱년기를 맞이했으면 좋겠다.
지금도 바라만 봐도 든든하고 좋은데 나보다 더 큰 세 아이를 보면 어떨지 모르겠다.
아이들을 품고 지냈던 시간은 나의 젊은 날이자 다시 오지 않을 반짝였던 시간이 될 테다.
대기만성이다, 전성기는 40대에 올 것이다 해도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황금기는 아이를 키우던 시기였을 것 같다.
나의 육아는 현재 진행 중이고, 아직 갈 길이 멀다.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지만 막연하게 잘 키우고 싶어서, 잘 키우는 게 뭘까 싶어서 많은 육아 책을 읽으며 고민했다.
다들 아니라 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 말에 흔들리다가도 우직하게 맞다 생각한 방향으로 밀고 나갔던 어린 엄마였던 내게 늘 고맙다.
그 시절의 내가 있기에 지금의 나와 아이들이 있다.
나에게 육아는 지름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