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공자_제9편 자한(子罕) 13.
공자께서 동쪽 오랑캐의 땅에 가서 사시겠다고 하자, 어떤 이가 말하기를, "누추할 텐데 어찌 지내시려 하십니까?"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가서 살면 교화가 될 터인데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
-《논어》, 공자_제9편 자한(子罕) 13.
아침에 첫째를 크게 혼냈다.
엄마를 쳐다보는 눈에 원망, 반항심이 묻어난다.
당연하게도 한 살 한 살 나이 들수록 아이들이 달라진다.
혼낸다고 혼나고만 있지 않다.
눈빛이든 무 대답이든 말투든 어떤 식으로든 못마땅함이 드러난다.
인사도 안 하고 가버렸다.
한숨이 나왔다.
설거지하면서 창문으로 아이가 건너갈 길을 보고 있었다.
걸어가는 뒷모습이 조그맣다.
교문 앞에 서 있는 수위 아저씨에게 꾸벅 인사를 한다.
핸드폰을 열자 인물 사진으로 웃고 있는 아이 얼굴이 뜬다.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가 얹어져 있는 거 같다.
매미 소리가 쌔애애 울린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떠있다.
비가 퍼붓던 주말을 감쪽같이 지워버렸다.
지금 신문 1면에 실린 현장에 남편이 있다.
언제 집에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폭우가 지나가니 폭염이 찾아왔다.
날씨는 변덕스럽게 순식간에 얼굴을 바꾸었지만 지나간 자리에 큰 피해를 남겼다.
학교 마치면 아들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온다.
엄마 부르며 들어올 아이를 꼬옥 안아줘야지.
엄마가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상처가 남지 않도록 다시 한번 차분하게 얘기해야지.
그리고 나도 이 무거운 마음을 오전 동안 많이 비워내야지.
사람 마음에도 복구작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