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ibooks Mar 17. 2018

[지금 만나러 갑니다]

대체 어떤 영화길래...

'지금 만나러 갑니다' 열풍

평소 멜로물이나 로맨틱물, 눈물을 쏙 빼는 최루성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 나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일본 버전 영화나 도서 원작에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고, 이전에 접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브런치 무비 패스 통해,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보고 나니 원작 도서를 읽어보고 싶어 졌다. 구내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검색을 해 본 결과, 내가 사는 지역 도서관의 모든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대여중이었고 다음에 읽을 사람까지 예약되어 있었다.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개봉한다는 소식에, 일본 버전의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새삼 책을 찾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인기가 대단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되었다.

원작을 읽지 못하고 나니 다음 순서로는 일본판 영화가 궁금해졌다. 포털 사이트에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검색해보면, 일본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자신의 인생영화이니 망치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부탁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다시 만난 영화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개봉일은 2018년 3월 14일이었고, 난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를 통해 개봉 전에 처음으로 이 작품을 감상했다. 그렇지만 내가 처음 소지섭, 손예진 주연의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마주한 것은, 마치 이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2017년 어느 가을날이었다.

서울의 모 대학교 캠퍼스를 지나던 중, 영화 촬영 중인 팀이 보였다. 학생작품을 촬영하는 걸까 했지만 규모가 조금 커 보였다. 속으로 궁금해하며 지나던 중, 한 사람이 벙거지 모자를 쓴 채 구석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다. 저 사람이 영화감독인가 하고 보는데 얼굴이 너무 작아서였을까 어쩐지 뚫어져라 바라보게 되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배우 소지섭 씨였다.

영화를 보기 전날에야 겨우 이 날의 기억이 재차 떠올랐다. 그날 내가 마주친 촬영 현장은, 우진(소지섭)이 수아(손예진)를 만나기 위해 서울의 대학교로 찾아갔던 날에 대한 장면이었다.


아날로그 감성

소지섭과 손예진이라는 배우는 상당히 오랜 시간 연기생활을 한 만큼, 그들의 연기를 지켜본 팬과 관객들의 연령층도 다양할 것이라 생각된다. 영화를 보면서 조금 당황스러웠던 것은, 생각보다 꽤 먼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물이었다는 것이다. 공중전화를 이용하고, 편지를 쓰고, 직접 찾아가는 로맨스를 지금의 10대와 20대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물론 이 시대의 젊은 커플들도 이렇게 말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있겠지만 고구마 100개 먹은 것 같다며 사이다를 요구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응답하라 시리즈의 영화 버전 같기도 했고, 오래전 흥행작으로 유지태와 김하늘 배우가 연기한, 시대를 초월한 로맨스물 [동감]이 떠오르기도 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20대 젊은 커플을 겨냥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영화를 본 뒤 생각해보니 이 정도로 고전적인 사랑이야기라면 충실히 3,40대를 타깃으로 은 것 거의 분명해 보인다.


아쉬운 점들

엄마이자 아내인 수아가 돌아와 함께하고 싶던 많은 일들이 있었겠지만, 주로 빨래나 계란 요리 등 가사노동을 가르쳐주는 설정이 조금 아쉬웠다. 물론 그것이 실생활에서 자신의 가족이 가장 필요로 하는 부분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죽어가는 아들이 늙은 아버지에게 비디오 녹화하는 법을 알려주던 [8월의 크리스마스]를 어느 정도 떠올리기도 했지만, 아내/엄마를 잃었고 요리를 못하는 두 남자가 필요로 하는 것이 가사노인지 아내/엄마 역의 그 사람인지 조금은 헛갈리게 연출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판 원작에서도 계란을 부치지만, 일본판의 주인공은 정말 아내가 없을 때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설정이 더 강했던 것 같다.
한국판의 주인공에게도 단추를 제대로 못 끼우거나 매일 부치는 계란도 능숙하게 해내지 못하는 설정이 있었음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자꾸 그것을 잊게 되었다. 이것은 연출적 요소의 문제인지 아니면 소지섭의 웬만한 일은 척척 다 잘 해낼 것 같은 외모가 오히려 핸디캡으로 작용한 것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슬픈 영화는 보고 싶지 않지만

로맨틱한 신파물을 싫어한다고 위에서도 적었지만, 그 이유는 슬픈 영화를 보면 울기 때문이다. 감정을 그런 방식으로 소모하는 것이 너무 버겁다. 슬픈 영화를 보고 울면 머리도 띵하고,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위로해주어야 하는 과제가 남는 기분이 귀찮은 것이다. 게다가 일상에서도 슬픈 일이 얼마든지 있는데 왜 굳이 슬픈 영화를 보고 또 울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어쩌면 남의 슬픔을 보고 울어주는 편이 나의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보다 수월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슬픈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들의 따뜻하고 연약한 마음과, 자신의 문제에서 거리를 두고 상황을 에둘러 보고 싶어 하는 심리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슬픔의 묘사 주력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쓴다. 일단 영화가 본격 신파에 접어들기 이전까지 꽤 탄탄한 구조의 스토리와 연출로 즐거움을 주었다. 살금살금 옛 연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덕분에, 어쩌면 설득되지 않을 법한 미신 같기도 하고 SF적인 설정에 관객들은 의외로 쉽게 녹아들어 간다.
또한 영화는 슬픔이 절정에 이르기 전까지 꽤 많은 웃음의 장치를 설정한다. 일본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우진(소지섭)의 단짝 친구(고창석)가 등장하고, 손예진은 로맨틱 영화로 다져진 아기자기한 연기로 특유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아역배우(김지환)의 연기도 딱 귀여울 만큼 좋았다. 게다가 의외의 카메오 출연(공효진과 박서준)에도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울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이유는, 배우들의 비주얼 덕분이 아니었나 한다. 가장 슬펐던 장면에서조차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매력적인 배우들의 모습이, 지나친 슬픔을 어느 정도 상쇄시켜 주었다. 내가 연기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도 하지만, 이것은 결코 배우들의 연기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또한 이 영화의 볼거리가 배우의 얼굴뿐이라는 뜻도 아니다. 외모의 아름다움을 갖춘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원작에서 갖고 있는 조금은 말도 안 되는 설정이나 과도하게 신파로 흐를 수 있는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설득력 있는 모습으로 균형을 잡아주었다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본판 영화의 전편을 모두 감상한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차분하고 정적인 슬픔이 절제되어 표현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경우는, 마찬가지로 슬픈 영화이지만 훨씬 상큼하고 산뜻한 느낌을 준다.

지난번 [리틀 포레스트]의 경우도 그랬지만, 일본판 원작 영화와 한국판 영화를 비교해 보면, 한국판은 훨씬 스토리라인을 부각시키고, 주인공의 풍부한 감정선을 이용하여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당연히 이것은 배우 개개인이 어떤 매력을 갖고 연기하느냐에 더 크게 좌우된다.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일본판에 비해 더 생동감 있는 감정선을 지닌 영화이고, 소지섭과 손예진의 산뜻하고 아름다운 매력이 빛나, 이 봄에 딱 보기 좋은 영화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셰이프 오브 워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