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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ibooks Mar 27. 2018

[레이디 버드]

붕 떠있는 것일까 날고 있는 것일까

레이디 버드의 추락

영화 [레이디 버드]가 성장영화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 도입부, 그러니까 엄마(매리언 역: 로리 멧컬프)가 운전하는 자동차 안에서 말싸움을 벌인 뒤 레이디 버드(크리스틴 역: 시얼샤 로넌)가 달리는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리는 장면을 보았을 때, ‘다치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을 애써 뒤로하고 내가 예측한 다음 장면은 바닥을 잠시 뒹굴다가 푸드득 새처럼 날아오르는 주인공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예전에 영화 [버드맨]의 엔딩에서 주인공이 날아오르는 장면을 보았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니까, 제목도 [레이디 버드]니까 주인공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어?’라는 내 얄팍한 예상을 뒤엎고, 한동안 분홍색 깁스를 한 레이디 버드를 볼 수 있었다. 아무리 에너지 폭발 직전의 십 대라 해도, 날 수 있는 능력도 없으면서 그렇게까지 무모할 거란 생각을 못했다. 그녀가 다치며 내 허황된 상상력에도 작은 스크래치가 났다. 나는 나의 무모했던 십 대 시절은 모조리 잊은 걸까? 아니, 어쩌면 나는 초인적 주인공이 등장하는 히어로물, 변신물, 판타지물, SF, 애니메이션 등에 너무나 당연하게 익숙해져 있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계속되는 레이디 버드의 행보를 지켜보았다.



레이디 버드의 사전적 의미

사실 레이디 버드_ladybird라는 단어는, 새의 한 종류를 일컫는 명칭이기도 하지만, 무당벌레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된다. 다음 사전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고방오리는 기러기목 오릿과에 속한 겨울철새라고 나온다. 철새는 자신의 거처를 옮기는 새라는 점에서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에 항상 비유되곤 한다. 그리고 물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리고 무당벌레. 우리나라 말로는 무당벌레지만, 영어로는 레이디 버드 또는 레이디 버그라는 예쁜 이름과 귀여운 외형으로 사랑받는 곤충이며, 외국에서는 애인에 대한 호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무당벌레에게서 영화 레이디 버드 관련해서 특별히 주목하고 싶은 점은, 유충일 때에는 예쁘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배우로서의 시얼샤 로넌은 영화 내내, 극 중 청소년기에도 성인이 되어서도, 가장 망가져 있어도 될 장면에서 조차  풋풋하고 서정적인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신의 외관과 별개로, 스스로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든 모르든 간에, 레이디 버드는 항상 ‘새크라멘토의 크리스틴’으로 사는 것을 스스로 '구리다'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자신의 존재와 주변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크리스틴은, 자신과 비슷하거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주는 친구들과 함께하며 위안받거나, 자신보다 부유한 환경에 있는 친구를 곁에 두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등 현실을 외면하려는 시도를 해보기도 한다.



크리스틴, 날다

무당벌레는 비교적 단단한 겉껍질이 있지만, 실제로 비행을 하기 위해서는 그 껍질 아래의 얇은 속 날개를 사용하기 때문에, 장거리 비행은 어렵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레이디 버드 자신의 표현을 따르자면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은 새크라멘토의 구린 지역에 위치해 있고, 딸을 지지할 여력이 없어 항상 냉정하게 말하는 엄마와 사이도 좋지 않아 레이디 버드는 항상 먼 도시의 대학에 합격해 집을 떠나고 싶어 한다. 먼 곳을 향한 비행을 꿈꾸는 레이디 버드에게, 못생긴 유충의 시절의 모습이나 날개가 튼튼하지 못한 현실을 인정하기란 고통일 뿐이고, 집안의 어려운 경제적 환경을 알면서도 지원 요청을 위해 부모를 설득하는 과정도 너무나 치열하다.


그러나 결국 레이디 버드의 첫 비행, 그러니까 살던 고향집의 탈출에 우여곡절 끝에 성공한다. 믿기 어렵지만 그 과정에서 레이디 버드가 깨달은 것은, 가장 진부한 것들- 가족의 사랑, 가장 힘든 시기를 함께 보낸 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마음이었다.


영화에서는 레이디 버드가 홈타운 탈출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학업적 노력을 한다던가 드라마틱한 성공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저 그곳에서의 시간을 견디는 동안 성장하고, 집을 떠나니 예전과는 다른 것들이 보이게 된 것으로 추측한다. 좋든 싫든, 자신의 가족과 새크라멘토가 무당벌레의 겉껍질 역할을 해왔다는 것, 그 아래에서 고단한 시간을 접힌 채 성장한 날개로 겨우 새로운 장소로 날아갈 수 있었다는 것을 레이디 버드는 드디어 자신의 이름 ‘크리스틴’으로서 깨닫는다.


물론 크리스틴이 엄마와의 사이가 앞으로도 계속 좋을 것이라거나, 갑자기 새크라멘토를 사랑하게 된다거나 하는 기대는 접는 게 좋을 것이다. 단지 한 번, 처음으로 크리스틴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조금 멀리서 보게 된 것뿐이겠지만,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한 단계의 성장인 것이다.



당신의 10대에 바치는 영화

영화를 만든 그레타 거윅 감독은 배우로 더 유명하다. 프로필을 보니 새크라멘토 출신이기도 하고 각본도 직접 써서, 혹시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화려한 기술력이나 비현실적인 장면도 없고,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하지 않은 솔직하고 조심스러운 영화이다.


[판타스틱 소녀백서]라던가 [지랄발광 17세]와 같은 영화와 비견될 만한 소재이지만, [레이디 버드]의 경우는 좀 더 소박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해와 사랑이 필요하지만 불안하고 불안정한 십 대의 붕 뜬 마음을 과장 없이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많은 관객들이 크리스틴의 성장과정에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각자 십 대의 추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것이 비록 어느 정도는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흑역사일지라도, 우리는 그 장면을 떠올리며 크게 웃을 것이다.



*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시사회를 관람하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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