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ROHABITAT _미소 서식처
어제는 아침부터 조조영화로 소공녀를 보고 왔다.
내가 영화를 영화관에 가서 보기를 종종 머뭇거리는 것은 몇 가지 이유에서이다. 사람이 많은 번잡한 곳에 가는 것이 피곤하고, 그런 곳에 가려면 어느 정도 주변의 시선에 맞춘 차림새가 아니면 신경이 쓰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곤함을 무릅쓰고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항상 만족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수적인 것들-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특정 언행이나 장면, 감독의 불분명한 의도, 내용이나 맥락과 상관없이 과도하게 벌어지는 상황들, 주인공의 일관성 없는 행동, 생각지 못한 결말, 너무 어울리지 않는 사운드나 과도하게 사용되는 음악 등에 불편하거나 아쉬워지는 경우가 있어서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보고 나온 후의 나의 감정과 상태에 대해 아무것도 추측할 수 없기 때문에 조금 불안해질 때가 있다.
소공녀는 평이 좋은 영화라 곧 봐야겠다 체크해 둔 상태였음에도 역시 영화를 보기 전에는 약간 긴장됐지만, 그래도 동네 작은 영화관의 평일 조조영화라면 여러 가지 면에서 부담이 적어진다. 눈뜨자마자 시간표를 확인했는데 아침만 먹고 편안한 옷차림으로 후다닥 나서면 상영시간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최근 본 영화 중에 가장 깔끔하다는 것이었다. 극 중 인물 미소(이솜 역)에게 충분히 위안받고 편안히 이입했으며, 주인공의 모든 결정과 결말에 만족하며 영화관을 나왔다. 사실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얼마 전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본 영화,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에도 미소 또래의 주인공 혜원(김태리)이 나온다. [리틀 포레스트]는 젊은 여성이 스스로 자립하고 삶에 뿌리내리려는 현실적 노력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임순례 감독이, 젊은 여자가 현시대에 한국의 시골에서 혼자 농사지으며 살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일본판과는 다르게 한국판 영화에서) 혜원에게 제공했던 것은, 곁을 지킬 친구들과 작지만 온기 충만하고 든든한 강아지였다. 아무래도 혼자는 무서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혼자였던 미소의 삶에, 영화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이 넣어준 것은, 담배와 위스키, 남자 친구 한솔(안재홍)였다.
사실 미소의 삶은 질곡이 많다. 관객 중 누군가는 미소의 과거 밴드 멤버들 중 몇 명처럼, 이런 불안한 삶을 보는 내내 불편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에서 편안함을 느낀 것은, 주인공이 자신의 취향과 선택의 의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고민을 할지언정 그것을 스스로 희생하거나 삭제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강건한 자아를 가진 주인공을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정작 극 중에서
여자들이 보는 미소의 삶은 다음과 같으며,
문영: 스탠다드는 아니잖아.
현정: 네가 부럽다.
정미: 너 이렇게 사는 거 염치없어.
민지: 유니크한 언니, 내 스타일이야! 마음에 들어.
남자들이 미소를 대하는 태도는 이렇다.
대용: 눈물의 하소연.
록이: 부모를 핑계 삼은 무례한 청혼. 감금.
한솔: 자신의 꿈을 접고 미소와 살 돈을 벌기 위해 외국으로 떠남.
스탠다드인 삶, 또는 그 이상의 권력을 지향하며, 그것이 없을 때 끝없이 불안한 사람들이 있다. 아니면, 그러한 사회적 권력구조에 의존하여 살아가다 더 이상 인정받거나 사용가치가 없어질 때 버려지는 경우가 있다. 당연히 이런 사람들도 늘 불안하다.
스탠다드를 지향하는 친구(문영), 부잣집 또는 가난한 집 아들과 결혼한 여자 멤버들(정미, 현정), 대학을 나온 뒤 권력층 접대부로 일하다 임신으로 일을 그만두게 된 여성(민지), 대출을 20년 동안 갚아야 하는 아파트에 홀로 사는 이혼 위기의 후배(대용), 집에 들어온 여자는 억지로 합방시키고 감금해서라도 아들과 결혼시키려는 부모 집에 얹혀사는 노총각 선배(록이), 미소와 함께 살 돈을 벌기위해 잠정적 이별을 선택하는 남자 친구(한솔) 각각의 삶은, 한국의 젊은 여성과 남성이 살아가는 현대의 사회적 현상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모두 결혼, 경제력 여부와 상관없이 불안하고 상실감에 휩싸여있으며 어딘가 종속되어 있는 삶을 산다. 그럼에도 몇몇 친구들에게, 가진 것 없이 취향만 살아있는 미소의 삶은, 한심하기도 하고 무례하게 대해도 되거나 무관심할 수 있는 것, 또는 막연히 부럽거나 유니크해 보이는 정도의 것이다.
영화 내에서 유일하게 미소의 친구가 아니라 고용인인 민지는 삶을 통해 얻은 고단함과 직업의 절실한 필요성을 알고 있다. 경험을 통해 이런 절실함을 알고 있는 미소는 곧 직업을 잃을 위기에서도 민지를 위로한다. 이는, 대개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사이에서는 주로 돈을 주는 쪽이 권력적 우위에 있게 됨에도, 미소가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진 가난한 사람으로서 선택의 기로에서 언젠가 한 번쯤 스쳤을지 모르는 삶이기에 가능한 위로이다.
물론 미소와 민지는 지향하는 바가 다르니 서로 다른 모습으로 여기까지 왔을 것이다. 미소는 현재의 삶을 선택했고, 우선순위에 따라 많은 것을 스스로 놓거나 자신의 삶을 간추려가며 살았다. 드디어 집마저 내려놓았지만 위스키와 담배는 있어야만 하는 그 선택이 누구에게는 불안정하고, 비루하거나, 염치없고, 스탠다드가 아닌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미소가 집을 포기하지 않고 민지와 같은 선택을 했다면, 아니면 결혼한 현정이나 정미와 같은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억지 합방을 해놓고 결혼하자는 록이 선배와 눌러앉았다면, 그러다가 결국 몇 달만에 후배 대용의 아내처럼 떠나버린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미소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미소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이 자신의 삶을 구성하고 그것들을 통해 자신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N포세대가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미소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들을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의 삶에서 그것들이 갖는 의미를 축소시키려 하지 않는다. 미소는 편안한 하룻밤을 위해 자신의 상황이나 취향에 대해 거짓말을 하거나 숨기거나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신의 삶에 드리우는 모습이 결과적으로 비루함이고, 주변 사람들의 속내를 읽었을 때 돌아오는 참담함이 있을지라도 강건하게 자신의 호흡으로 자신을 지키며 살아낸다. 또한 자신과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나 떠도는 삶을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대하고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따뜻하고 담담하게 행동하며, 자신의 품위를 잃지 않는다. 권력 구조에 편입되려 하지 않고 부유함이나 안정감에 넘어가지도 않으며, 척박한 세계에서 자신이 위안받는 것을 힘겹게 지켜내어 곁에 두고 살아낸다. 가난함 속에서도 이렇듯 손상받지 않는 미소의 강함과 올곧음이, 거슬리는 사람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누군가는 [소공녀]에 나오는 미소의 삶이 비현실적이고 미화된 삶, 어쩌면 미련한, 어쩌면 허황된 삶이라고 하겠지만, 이런 꿋꿋한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위안이고 기쁨이 되었다. 사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영화 [소공녀]에는 아무런 힐링 포인트가 없을 수도 있다.
다시 조금은 그 감상을 비교해 보자면, 볼 때 밝고 기분 좋은 영화였던 [리틀 포레스트]에는 흥행에 실패할 수 없는 몇 가지 힐링 포인트, 즉 강아지와 먹방과 자연의 풍경이 나옴에도 오히려 나에게는 크게 힐링으로 다가오지 않았었다. 현실의 고단함 역시 충실히 보여주었지만 이입되는 부분이 적었다. 반면 [소공녀]에서는 미소가 노동 후에 가끔씩 밝고 노랗게 빛나는 위스키를 한 잔씩 마시는 장면에서 기쁨과 휴식의 기분을 함께 느끼곤 했다.
두 여성 감독의 영화들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자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 항상 응원하는 마음이 된다. 그러나 아무래도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이 혼자서도 잘 살아나가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잘 자리잡기 위해 애쓰는 모습보다는, [소공녀]의 미소가 이 사회에서 스탠다드로서 용인되기 어려운 삶의 방식을 들고 나와, 지인들에게 일종의 낮은 평가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취향을 잃지 않는 모습에 더 마음이 쓰인다.
이것은 [리틀 포레스트]보다 [소공녀]가 더 좋은 영화여서가 아니라, 미소가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타협하지 않는 강건함이 있을지라도, 사회적 구조 안에서는 취약층임과 동시에 보호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종류의 성공과 거리가 먼 사람, 사회에서 인정하는 구성원이 아닌 홈리스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소의 삶은 취약계층에게도 존재하지만 쉽게 잊혀지곤 하는 그들의 인간적 존엄을 대변하며, 미소의 취향에 대한 비판- 즉 '홈리스가 염치없이 무슨 위스키냐'라는 마인드는 요즘 대두되는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시선의 문제- '가난한데 무슨 돈까스를 먹느냐'와 같은 사고방식과도 직결한다.
결국 영화 [소공녀]는 취약계층의 서사이고 여성의 서사이자 마이너의 서사이다.
[소공녀]라는 동화에서 따온 제목이 오히려 조금 영화를 감상하기 앞서 주저하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소공녀'라는 동화는 조금은 신파스럽고, 가장 비극적 상황중에서 가능한 최선의 결말을 주는, 해피엔딩이라기에도 조금은 곤란한 차악의 스토리라는 인상이 있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도 비슷한 설정이나 구조는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걱정하던 신파적 장면은 거의 없었고 영화의 트레일러에서 보이던 팬시한 느낌 또한 거의 없어서 오히려 좋았다. 보는 내내 담담했고 배우들의 연기 또한 과장되지 않아 편안했다. 이솜이라는 배우가 가진 담백한 매력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 생각된다.
영화 [소공녀]의 영문 제목은 microhabitat이다. 내가 알기로 동화책 '소공녀'의 영문 제목은 그것이 아니었던 것 같아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단어의 의미를 읽고 웃음이 났다.
정확히 미소 서식처(微小棲息處)가 무엇인지 또 다른 사전을 찾아보았다. 특정한 생물체나 미생물이 서식하는 국소지역이라는 의미가 있었고, 미소 서식지(微小棲息地)라는 단어도 비슷하게 사용된다고 한다.
미소 서식처라니. 영문 제목에는 소공녀와는 또 다른 의미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가 가진 이름의 뜻은 smile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소'라는 단어를 다시 검색해보니 다음과 같았다.
영화 [소공녀]의 영문 제목 microhabitat_미소 서식처에 사용된 미소(微小)는 3번째 단어이다. 그러니까 아주 작음이라는 뜻이다. '미소 서식처'란 주인공 미소가 살아가는 곳이란 의미이기도 하고, 특정 생물이나 미생물 등이 살아가는 작은 영역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게다가 실제로 미소가 사는 장소들이 아주 작고 가장 저렴한 방이나 텐트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아주 작은 서식처라는 뜻이 될 수도 있는 단어 '미소 서식처'의 여러 가지 의미가 재미있다.
또한 이 단어로부터, 영화 후반부 장례식장 장면에서 미소를 제외한 밴드 멤버들이 만나서 미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의 "미소를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지지 않느냐"라는 대사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물론 미소를 생각하면 나도 미소를 짓게 되지만, 이것이 그저 동음이의를 통한 언어유희일지라도 조금은 놀랐다.
내가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의 이름에 대해 smile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해 버렸듯, 미소의 친구들도 미소에 대해 각자 다른 생각과 판단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리는 평가나 판단과는 별개로 미소는 존재하고 있으며, 어느 한 사람의 미소(微小)한 삶의 방식이나 그 이름이 갖는 본질적 의미는 타인의 생각과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