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로드무비
[트립 투 스페인]을 보기 전에, 어떤 영화일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로드무비겠구나 싶은 짐작은 어렴풋이 있었지만, 수요 미식회 같은 분위기일지, 먹방이나 요리 영화일지, 분위기는 진지할지 코믹할지, 어떤 점을 가장 기대해야 할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심지어 나는 거장 반열에 들었다는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그 전작들 중 단 한 편도 본 적이 없고, 검색을 통해 다른 트립 투 시리즈(영국, 이탈리아)가 있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 뭔가 시리즈물의 3탄을 본다는 데에 불안감도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기로 결심한 것은, 오로지 스페인의 요리와 풍경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켰을 뿐 아니라, 최근 본 영화 중에 가장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을 선사받았다.
영화 [트립 투 스페인]은 실제 존재하는 도시와 식당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해 나가는 로드무비의 성격이 강하지만, 생각보다 음식 먹방 또는 요리에 대한 찬사와 재료에 대한 지식과 묘사를 늘어놓는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오랜 친구사이인 두 주인공의 삶의 생애주기에 꽤 큰 비중을 두고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롭과 스티브는 50대이고, 그들의 육아와 자녀,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이 영화의 스토리를 이어나가는 데 중점적 역할을 한다. 롭은 침범벅이 된 아기를 돌보던 중 제안이 들어와 여행하게 되었고, 스티브는 여행 중 아들 조가 합류하기로 했으나 결국 올 수 없었던 것도 아이에 관한 이유에서 였다.
아찔하도록 아름다운 해변도로, 자연과 조화를 이룬 아름답고 장엄한 성벽, 역사적인 장소들을 배경으로 두 사람의 삶에 대해, 특히 일과 사랑, 가족을 대하는 태도, 두 사람의 우정, 서로와의 관계에 있어 다르거나 대조적인 성향들에 대해 관객들은 낱낱이 알게 된다. 조금은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민감해 할 수 있는 소재들도 등장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오랜 우정으로 다져진 기막힌 유머, 우리도 알고 있는 유명인들의 성대모사, 기발한 아이디어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깔깔거리며 웃게 만든다. 그리고 두 친구가 스페인의 역사와 종교에 대한 지식을 겨루는 모습도 이 영화에서 눈여겨 볼만한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또한 결말마저 놀라웠다. 그 결말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엔딩 타이틀이 끝날 때까지 뭔가 결말에 대한 부연이 나올까 하여 눈을 뗄 수 없었으며 (나오지 않았다), 동행한 사람에게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인해야 할 정도였다. 어느 정도 4탄을 예고하게끔 한다고 보는 것이 나름 희망적인 해석이라 생각된다. 이는 충격적이지만, 사실은 영화에서 두 친구의 여정과 그들의 이야기 내용을 잘 생각해 보면 필연적인 결말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관타나모로 가는 길'이나 '온 더 로드' 같은 윈터바텀의 전작을 꼭 찾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트립 투 스페인]을 보실 분들은 스페인 역사나 올드무비 및 배우들에 대한 지식이 있는 상태로 본다면 훨씬 재밌을 것 같다. 다음 영화 [트립 투 스페인] 페이지 하단에 있는 팁을 참고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11619
*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제공된 시사회를 보고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