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
이사하고 작은 외출 루틴 2가지가 추가되었다. 열쇠 챙기기와 문 잠그기. 소소하지만 외출에 필수적인 과정이라 존재감이 꽤 컸다. 거기에 더해 경첩의 문제인지 안에서 잠금을 풀 때는 문을 당긴 채로 걸쇠를 풀어야 하고, 밖에서는 문을 살짝 밀어야 열쇠가 끝까지 돌아간다. 그래서 현관문을 여닫을 때는 꼭 양손이 필요하다. 신발을 신는 동안 맑은 날에는 선글라스와 양산을, 흐린 날에는 우산을 챙기는데 한 손으로는 문을 열지 못해 다 내려두고 문을 열고 다시 들고 나가기를 한 달째 반복하고 있다.
이사 갈 집을 구할 때 도어락의 유무는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웬만해선 도어락이 설치되어 있기도 하고 4년 반 전까지는 열쇠를 사용했던 터라 꽤 익숙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건 아니었다. 당시에는 얼마 전 여행에서 사 온 영화「주토피아」 속 팝시클 키링을 정말 열쇠고리로 쓸 수 있겠다며 좋아하기까지 했다. 이사 첫날 신발장 위에 향수와 함께 열쇠를 올려둘 자리까지 예쁘게 마련할 정도였다. 짤랑짤랑 번거롭기는 해도 매일 들고 다니는 나만의 물건이 늘었다는 점도 신이 났다.
열쇠가 불편함으로 다가온 건 나 혼자 사는 집에 가족이 연결되는 시점이었다. 이따금 놀러 오는 엄마와 동생은 나의 공간을 존중해서 늘 초인종을 누르고 밖에서 기다렸는데, 나는 비밀번호도 알고 있으면서 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게 좀 귀찮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둘은 직접 문을 열고 들어왔고, 내가 집을 비울 일이 있으면 대신 택배를 넣어준다거나 이것저것 챙겨주기도 했다.
그런데 열쇠집으로 이사하자 모든 출입은 열쇠를 가진 내가 있어야만 가능해졌다. 딸이 출근한 사이 새집에서 쓸 물건을 챙겨 화명동까지 와준 엄마는 더운 날 물 한 잔, 시원한 바람 한 점 쐬지 못하고 문 앞에서 돌아가야 했고, 집을 며칠 비워야 했던 첫날 예상치 못한 택배가 일찍 도착하며 주민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는 동시에 집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보이고 말았다. 이 외에도 더 이상 가족들이 화명동을 지날 때 가볍게 들려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니게 된 것도 아쉬운 점 중에 하나다. 열쇠 여분 1개는 얼마 전 엄마에게 맡겼지만 매일 필요한 물건이 아니라 본가의 책꽂이 한 켠에 올려져 있다.
새삼 열쇠 2개로 네 식구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졌다. 그때는 늘 1명 정도 항상 집에 있었다. 모두가 외출할 일이 있는 날이면 누가 제일 마지막에 나가고 먼저 들어오는지 확인하고 그 두 명이 열쇠를 나눠 가져갔다. 집 안으로 들어오면서는 도어락처럼 자동 잠금 기능이 없으니 현관문을 수동으로 잠구었다. 초인종이 잘 되지 않아서 늘 문을 두드리며 "저 왔어요~", "아빠/엄마 왔다"라며 안에 있는 사람을 불러야 했다. 그러면 후다닥 뛰어나가 문을 열었고, 현관에서는 "어서 와", "다녀오셨어요"가 들렸다.
돌이켜보니 집에 들어오는 방식의 변화가 우리 가족의 대화 감소에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항상 서로의 일과를 물었고, 문을 열고 잠그기 위해서는 마중과 배웅이 일상이었다. 도어락을 처음 사용할 때는 열쇠를 챙기지 않아도 집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현관은 그저 통과하는 공간이 되었고 인사는 부러 하러 나가야 하는 행위가 되었다. 아날로그의 소중함을 이렇게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