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줄 소설 공모전
"피란 나올 때 남들은 쌀부터 챙겼지.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보름만 있으면 올 거다, 쌀은 닷 되면 된다" 하시고, 시계하고 요강, 망치, 모기장을 챙겼어.
기차 방통에 등이 있길 하나 창문이 있길 하나, 온 마을 사람이 다닥다닥 들어앉았는데 아버지가 걸어둔 시곗바늘 보며 시간을 가늠했지.
차가 덜컥덜컥 움직이고 쪼매난 애들이 "엄마 오줌 마려워, 똥 마려워" 아우성이면 요강으로 받았어.
요강이 쉼 없이 돌고 또 돌고, 10분도 쉴 새가 없더라고.
차가 멈추면 물을 받아와 요강을 씻고, 나무를 쪼개 밥 불을 땠어.
여기 부산 내려와서는 집이 없으니까 부산역 앞 길바닥에서 자야 하는데, 아버지가 망치를 들고 나무를 몇 개를 툭툭 잘라서 땅에다가 박더니 모기장을 척 치더라고.
새벽이슬에 딴 사람들은 이불이 다 젖었는데, 우리는 모기장이 가려줘서 하나도 안 젖었어.
모기장도 매일 쓰다가 착착 싸서 놔뒀더니만 오래되니까 팍삭팍삭 삭아서 가루가 됐지.
근데 그 요강은, 아직도 우리 다락에 있어."
from. 당감 행복한 마을 주민인터뷰집: 당신을 기억하는 감성 기록프로젝트 (빨간집,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