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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봉수 Aug 27. 2022

[영화]나이트메어 앨리 (Nightmare Alley)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 (Nightmare Alle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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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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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모임의 주제로 선택된 영화.


제목을 보고 공포물인 줄 알았는데 스릴러쪽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다만 장르 구분은 잘 모르겠으니 그냥 넘어가고...



영화를 보기 전에 포스터를 봤는데 "지난 10년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엔딩".... 이라는 문구가 있길래 기대를 했었는데... 솔직히 그저 그랬던 것같다. 내가 이상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보고 살펴보니 이미 1947년에 영화화되었던 소설. 시기적으로 세계대전이 끝난 후 "망가져버린 사람들"에 대한 반성과 허무주의 등이 팽배하던 시기의 작품이니 그럴 법도 하겠다 싶다. 저 "지난 10년 영화 역사"가 1937년부터 47년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으려나?



영화의 배경은 2차세계 대전이 발발한 1939년을 중심으로 몇 년사이. 장소는 뉴욕 (그래... 뉴욕이어야지. 효용이 있다면 모든 것을 활용하는 도시가 뉴욕이라니까...). 아버지를 증오하던"사람의 눈길을 끄는 재주"를 가진 '스탠턴'은, 늙은 아버지를 죽이고 집을 불태우고 떠나, 우연하게 (혹은 당연하게) 유랑 극단에 들어가서 일을 하게 된다. (유랑 극단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한다.) 처음엔 단순한 잡부였지만 타로점과 사람들의 행동을 분석해서 심령술 혹은 독심술처럼 사용하는 기술을 배우게 되고, 이 기술을 이용해 인기와 부를 쌓게 되지만, 결국 자기자신마저 파괴해버리는 이야기.



영화속 곳곳에 배치된 대사들은 사람들의 욕망이 어떻게 자기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지 서로 다른 톤으로 이야기를 한다. 죄를 지은자는 신(악마)의 얼굴을 볼 것이다라는 '유령의 집'이나, 자기 기술을 믿고 스스로를 속이다보면 마지막엔 신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던 '피트'나, 사기로서의 심령술은 끝이 안좋다고 여러차례 경고하는 '지나', 그리고 사람들을 속이는게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속이는거라는 '릴리스' 박사까지. 결국 사람의 마음은 견고하지도 않고 믿을만하지도 않고 의지할만하지도 않다.



그나저나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이었는지 잘 잡히지가 않는다. 감독은 친절하게 "나이트메어 앨리는 운명에 관한 이야기"라고, "인생역전이 가능했지만, 결국 자만에 빠져버리는 남자의 이야기"라고 정리해주지만 여전히 깔끔하지가 않다. 단순히 한 사람의 성공과 좌절에 대한 이야기로 설명기에는 장치들이 너무 많다. 오히려, 인터뷰에서 "약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세상에서 맺는 인간관계와 관련되어 있다"고 말하는 '피트'의 표현이 좀더 와닿는다. 상류사회니 유랑극단이나, 주인공의 성공에 대한 욕망이니, 인간의 감정 뒤에 숨어있는 어두운 욕망이라고 표현하는 건 진부하지 않나?



감독이 영화 엔딩에서 주인공이 결국 마주칠 것이라고 말한 "진실"은 무엇일까? 자신의 본성? 아니면 자신이 버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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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골목, 유랑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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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mare Alley> (나이트메어 앨리 : 악몽의 골목). 골목은 목적지가 아니라 지나쳐야하는 과정일 뿐이다. '유령의 집'은 진짜가 아니며, 카드점을 치는 지나는 "나쁜 카드는 없다" 말한다. 마지막으로 주인공이 선택한 유랑극단의 이름은 "Allison" 극단이라는 것은 스탠턴이 여전히 그 악몽의 골목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며, 결국 그 골목안에서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Geek)으로의 역할을 받아들인다.



악몽의 골목안에서, 유랑극단은 실제적 삶이 구현되는 무대다. 스탠턴은 아버지를 죽이고 나서야 본격적인 (어른의) 삶, 삶의 장 (유랑극단)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그 곳에서 삶을 배우고, 결국 그 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극단으로 들어올 때 스탠턴이 가지고 있던 시계와 라디오. 라디오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티켓이고 아버지로부터 가져온 시계는 자신의 뿌리이자 자기 자신 (그래서인지, 주인공은 모든 것을 바뀌는 상황 속에서도 시계는 바꾸지 않는다).



기인 (Geek)을 처음 봤을 때 스탠턴의 감정은 불편함이었을 것이다. 그가 보기에 기인은 그저 망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에 대해 듣게된 주인공의 반응은 "Poor soul" (불쌍한 영혼). 아직 스탠턴은 망가지지 않았고, 그런 망가진 이를 보면서 우월감을 느끼지 않는다. 자신도 바닥에 있으니까.



완전히 망가진 사람을 더 망가지게 해서 결국은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존재를 만든느 속임수를 자신에게 쓰는 극단주. 스탠턴은 그 결말이 무엇으로 이끄는지 알면서도 "기인이 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라고 말로 자신을 포기해버린다.



참고로 Geek은? https://www.cjr.org/language_corner/geek.php 미국 유랑 극단에서 사용하던 흔한 도구(?) 대상이었다고 한다. 살아있는 닭이나 뱀의 머리를 뜯어먹는 존재를 보면서 사람들의 심리상태에 대해 극단주인인 클랜은 "우월감"이라 답한다. 그리고 우월감은 스탠턴과 릴리스의 갈등이 첨예하게 될 때 다시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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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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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나이트메어 앨리>라는 영화를 기괴하게 보이게 만드는 소품가운데 최고를 꼽으라면 아마도 에녹이라고 이름붙인 알코올 표본일 것이다. 단순히 기괴한 수집품이라고 말하기에는 이름도, 모습도 가볍지가 않다. 더욱이 극단 주 클랜은 에녹의 시선이 자신을 따라다닌다는 것을 느낀다. 버림받은 사람들의 천막안에서 버림받은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표본들. 에녹은 클랜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 역시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하는 듯하다. 저주받고 버림받아 눈요깃감이 되어버린 에녹은, 스탠턴의 최종적인 파멸의 순간 엘리슨 극단에서 다시 주인공을 맞이한다.



그나저나 이름은 또 왜 에녹? 성경에 따르면, "에녹은 육십 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 육십 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고 표현된 인물이다 (창세기 5장 21-24). 하나님과 동행하다 죽지않고 살아서 승천한 인물인데 하필 사산아 표본에 이름을 그 이름을 붙인 이유가 뭐였을까? 그것도 해부하다싶게 갈기갈기 찢겨졌다 꿰메진 모습에 이마에는 눈(?)을 하나 더 달고 있는 모습으로...



에녹을 비롯해 표본실에 담긴 물체들 (태아들로 추정),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모친을 죽이고 나오는 존재, 혹은 태속에서 이미 죽어버린 존재들. 결과적으로는 세상에서 축복받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 혹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버림받은 존재들. 천국에서 쫓겨난 인간, 악마가 지배하는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 신으로부터 외면당한 불쌍한 죄인들이 에녹과 그리 다르지 않다. 천막을 가득 채운 표본들 앞에서 "여기, 유랑극단에 모인 우리들의 형제 자매들이지"라고 에녹이 (혹은 악마가) 말하는 것 같다.



영화의 진짜 마지막. 주인공이 기인으로 자신을 포기한 이후 카메라는 표본안의 에녹을 천천히 보여준다. 어쩌면, "에녹"의 모습이 우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같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렇게 추한 존재, 부모를 죽이고 나온, 그렇게 기워진 존재. 어려서 큰 충격은 평생 틈으로 남고 큰 구멍이 되어 결코 채워지지 않는 상처 (피트의 대사)를, 옷으로 가리고 사는 존재 (릴리스의 대사). 특히나 가슴에서부터 아래로 이어진 릴리스의 커다란 흉터는 릴리스 역시 에즈라 - 에녹 - 낙태로 이어지는 죄악의 고리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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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디푸스 vs.엘렉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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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정리하면 외디푸스 콤플렉스는 남아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사랑을 느끼고 아버지를 경쟁자로 인식하는 것, 그리고 엘렉트라는 그 반대. 신화속에서는 기어이 아들은 아버지를, 딸은 어머니를 죽인다. 현실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그들의 세계" (아버지는 아버지가 아니고, 어머니는 어머니가 아니니까)의 법칙을 내면화하면서 성인이 되어간다는 것.



릴리스가 스스로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얘기를 하기도 했지만, 스탠턴의 여정이 외디푸스에 딱 맞는다. 스탠턴에게 아버지는 두 명. 너무 늙어 아무 힘이 없을 때까지는 아무 것도 못하다 다 늙어 죽을 때가 되어서야 창문을 열어 동사시킨 것과 달리, 피트와의 일들은 좀더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세상의 비밀을 알려주는 것이나(기술과 책), 실수로 죽이게 되는 것이나, 심지어 어머니 (이 경우는 지나)와의 관계까지 포함해서.



콤플렉스가 있다 혹은 그런 요소가 있다더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엔 그것이 영화속에서 어떻게 기능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흔히 그렇듯 어머니는 자신을 품어주고, 위험을 인지하게 하고, 경고하고, 기도해주는 관계. 에즈라로부터 도망쳐서 부랑인들과 섞여 사는 동안 구멍난 구둣창을 대신하기 위한 기사속에서 다시 나타나는 지나. 지나는 바닥까지 떨어진 주인공을 다시 세상으로 끌어낼 수 있는 단상, 혹은 운명의 동앗줄 같은 역할을 한다.



스탠톤은 아버지를 증오했다고 인정한 아버지를 죽이는 장면. 총칼이 아니라,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버지를 침대에 눕혀두고 겨울에 얼어죽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은 모포를 둘러싸매고 앉아서 지켜본다. 제2의 인생을 살게해준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피트에게는 메탄올이 들어있는 병을 "실수로" 건네서 죽게 만든다. 외디푸스 컴플렉스? 그렇다면 릴리스가 "엘렉트라 컴플렉스"라고 말하는 장면과 대비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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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이성,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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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는 두 번의 전쟁으로 인해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이 부정되던 시기다. 과학기술은 이미 종교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종교의 자리에까지 올라갔으나, 그 과학을 사용하는 인간은 여전히 원시의 종교적 마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독실한 신앙심을 보여주는 보안관이 어머니의 사진을 넣은 목걸이를 차고 있는 것은 여전히 정서적으로 유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독립하지 못한) 인간의 모습이자, 거룩하고 엄숙해보이는 종교조차 그런 기반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의 역설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해 주인공을 검사해보는 에즈라가, 얼마 지나지 않아 심령술이든 강령술이든 괜찮으니 죽은 자기 여자를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과학으로 대체되기만 했을 뿐 여전히 같은 조건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굳이 덧붙이자면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재력과 권력이 가진 힘을 더 우월하다 여긴 에즈라의 모습은 이성과 과학의 시대가 이미 자본으로 넘어갔다고 보여주는 것도 같다. (이건 약간 어거지. 인정.)



두 사례에 비하면 조금 덜 전형적일 수는 있겠으나 판사 부부도 마찬가지. 전쟁에서 죽은 아들을 잊지 못한 채 주인공에게 위안을 얻은 (사기를 당한) 판사 부인은, 아들을 전장으로 보냈던 남편 (판사)을 총으로 쏘아 죽인 후 자신도 자살한다. 이제 다 천국에서 만날 거라며... 마지막 대사는 "오, 줄리안...(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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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속이다. (구원받지 못하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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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스의 대사 "니가 사람을 속이는게 아니야, 사람들이 스스로 속이는거지"



포스터 상단 뒤에 배경으로 보이는 것은 이른바 "칠대 죄악" - 탐식 (Gluttony), 탐욕 (Greed), 나태 (Sloth), 정욕 (Lust), 교만 (Pride), 시기 (Envy), 분노 (Wrath) - 그 중에서도 뚜렷이 보이는 것은 정욕, 교만, 분노, 탐욕. 정확하게 주인공의 단계를 설명해준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deadly sins 를 범했으니 파멸하는 건 정해진 수순.



극단의 호객꾼이 "거울이 여러분의 진실을 보여드립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주인공이 "기인(geek)" 찾아들어간 '유령의 집'안에서 마주한 표현 "죄 지은 자 신의 얼굴을 볼 것이다"라는 표현과 겹치며, 다시 피트가 말했던 신의 얼굴을 보게 되는 순간에 겹치게 된다. 그렇다면 거울이 보여주는 진실은 죄를 지은 인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걸 단순히 "성공에 대한 욕망"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면이라고 보는 것이 (비슷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더 타당하지 않을까?



몰리도, 지나도, 피트도 사기꾼이지만 자기자신을 속이지는 않는다. 그들은 선을 지키고 망가지지 않는다. (선에 대해서는 몰리와 스탠턴이 다시 얘기를 한다) 다른 사람을 속이다 (관찰이든 점이든) ..... 그 사실 (자기일. 자기위치)를 잊으면 스스로를 속이게 된다. 누구도 신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피트의 대사는 죄악의 땅에 살면서 죄를 짓지만 여전히 자신을 지켜가는 사람들을 표현하는 지도 모른다. 성경속에서 수많은 죄인들 가운데 예수님이 계셨듯이? (여전히 너무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다)



스탠턴은 자기를 속이고 자기를 잃어버리게 된다. 자신이 만났던 기인 (Geek) 계속 이건 내가 아니야. 이건 내가 아니야라고 하던 말은 그럼에도 결국 스탠턴도 그렇게 된다는 뜻일 것이다.



결국 자신이 선택한 길. 계속 말리는 사람들. 이걸 무시하고 가느냐 멈추느냐



입구도 극단. 출구도 극단.


입구도 기인. 출구도 기인.



성경속, 죄악으로 파멸한 도시의 대표를 꼽으라면 아마 소돔과 고모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소돔과 고모라조차 그 도시에 의인이 10명만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신이 말했었다.



물론, 릴리스는 악마다.


그리고 생각이 이 때 딱 생각나는 영화 하나.



<데블스 에드버킷>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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