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영어][어학] RP는 영국 표준어가 아니다?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녀본 사람들은 한번쯤은 들어봤을 (주관식 문제의 답으로도 써봤을) 문장입니다. 이름하여, "한국어 표준어 사정원칙"이죠. 교양있는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현대에 살고, 서울태생이다보니 너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내용이지만 사실 저건 일종의 폭력이기도 합니다. 교양도 있고, 많이도 (두루) 쓰고, 현재 (현대) 언어임에도, "서울"이 아니면 표준어가 아니라는 뜻이고, 표준어가 아니라는 건 "지방" 혹은 "사투리"가 되기 때문이지요. 뭐.... 서울공화국, 서울대공화국, 수도권중심주의 등등으로 표현되는 중앙 집중적 사고가 문화권 전체와 교육과정안에 자리잡은 하나의 증거라고도 할 수 있죠.
사실 한 국가에서 국민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언어"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가는 국영 매체 등을 통해 "하나의 언어"를 보급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지요. 영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요, 오죽하면 BBC English 라는 표현이 있을만큼 BBC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의 언어를 표준 영어라고 부를 수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BBC English는 영국의 표준어 일까요?
영국은 아예 대놓고 "악센트가 클라스를 정의한다"고 말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 말이 영국외 다른 나라에서는 악센트가 클라스와 상관없다는 뜻은 아닙니다만, 최소한 이걸 대놓고 말할 만큼 자신들의 악센트에 배타적인 자부심을 표현하는 나라가 영국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My Fair Lady>에서 히긴스 교수가, 비교적 최근에는 <Kingsman the Secret Agent>에서 주인공 에그시가 신사의 조건으로 악센트를 배우는 것이냐고 대놓고 묻기도 하죠.
https://blog.naver.com/anima221/222844749146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 영국엔 표준어가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영국에는 법률 혹은 규범으로 정해진 "표준어 사정원칙" 혹은 "표준어"를 정하고 있지 않지요. 현대 사회에서 국가가 시민들의 정체성을 재단하고, 기준짓고, 분류하고, 명시적으로 이익 혹은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기본권에 위배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첫 문단에서 "폭력"이라고 했잖습니까..)
이름도 이상한 RP (Received Pronunciation : 수용된 발음)의 이름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서울 사투리, 개성 사투리, 부산 사투리 등 지방 이름이 아니라 "수용된 발음"이라... 누구한테 어떻게 수용된 혹은 용인되는 발음이라는 걸까요? 흔히 접하는 BBC English 도 마찬가지입니다. BBC English가 표준 발음을 표현한다고 하지만 그건 현재의 영국사람의 발음을 특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지 다른 발음이 "틀렸다"고 하는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표준어"같은" 언어가 없다는 뜻은 물론 아닙니다. 흔히 영국영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배우고자하는 RP 를 비롯해, 영화속 멋진 주인공들이 쓰는 악센트라고 알고 있는 Posh Accent (비트는 경우를 제외하면 주인공들만 씁니다) 등이 있구요, 영화속 여왕이나 왕족들이 쓰는 Queen English도 있지요. 한편으로는 소위 "배운사람들이 쓴다"고 하는 Oxford English 라는 것도 있구요, 인종을 막론하고 거의 비슷한 인토네이션 (억양)이라고 하는 BBC English 라는 것도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정확하게 하나를 콕 집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뭔가 있기는 있다고 할 수 있을텐데요. 현재의 영국의 표준발음 권역을 다이어그램으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생각같아선 지역방언, 교육수준, 계층/계급을 세 축으로하는 입체로 만들어보면 좀더 잘 맞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인터넷에서 찾은 사진 중에서는 위의 다이어그램이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같은 거 같은데 좀 다른 이유는 각각 개별적인 악센트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RP를, BBC English를, 포쉬 악센트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비슷한 악센트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묶다보니 그 이름으로 악센트가 불린 것이죠. 그렇게 본다면 Received Pronunciation (용인된 발음)이라는 의미의 RP도 당시 자신들의 악센트를 통해 계층을 구분하던 사람들의 생각에 "용인할 수 있는 발음"이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