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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봉수 Jan 15. 2020

[책]<존 로빈스의 음식혁명>, 존 로빈스, 시공사

육식과 채식에 관한 1,000가지 오해

<존 로빈스의 음식혁명>, 존 로빈스, 시공사, 2002


책을 열어보지 않아도 무슨 내용인지 다 알 수 있는 책이 있다. 좋게 말하면 그만큼 메시지가 명확하고, 논리의 흐름이 읽히는 책들. 사실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런 직접적인 책들의 경우 대부분 자기중심적으로 확증편향적인 태도를 가지고 텍스트를 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제국의 아들이었던 존 로빈스의 채식주의자로서의 삶에 대한 예찬이라니… 거부할 수 없을만큼 섹시하고, 정확하게 그만큼 공허하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웬걸 나름 재미나다.



<음식혁명>은 부제에서 표현한 것처럼 육식과 채식에 대한 오해를 풀기위해 (1,000 가지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쓰여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예 한 문단으로 저자가 요약해준 결론에 의하면 “육식은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 (p.12), 조금더 부연하면 역시 표지에 나온 표현대로 “인간과 지구를 파멸로 이끄는 육식과 유제품의 폐해를 파헤지다” 정도로 요약이 가능하다. 나머지는 부연설명으로, 미국의 공장식 사육은 비인간적으로 잔인할 뿐만 아니라, 본래 가축의 면역력 등을 떨어뜨리고 각종 화학약품을 사용하게 되기 때문에 동물인권이란 점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안전을 위해서도 금지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식물재배에서도 같은 형식으로, 유전자 조작 작물 (GMO)의 위험성을 다양한 자료와 근거를 들어 고발하고 있다. 


책의 영문판 초판이 나온 것이 2002년. 한국에서의 초판이 2006년, 내가 읽은 책은 2011년 개정판. 그리고 지금이 2020년. 그러니까 무려 20년의 간격이 존재하므로,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육식과 채식에 대한 오해는, 현시점에서의 상식에는 맞지 않다. 그러나 저자가 책을 집필할 당시의 육식과 채식에 대한 상식수준에서의 평가는 완전히 뒤집어졌음에도 불구, 책에서 문제삼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점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진행형이라는 것도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20년전 책에서 이미 “유럽이 미래”라고 선언했음에도 불구 저자가 기대했던 미래가 오지 않았다는 점, 육류의 생산방식이나 유기농 곡물재배에서 놀라울 만한, 저자의 표현으로는 유기농 작품의 재배면적이 매년 2배 ~ 10배 이상의 확장되고 있다거나 혹은 매년 유전자 조작 품종을 재배해는 농경지 면적이 25%씩 준다는 표현에도 불구, 아직까지는 충분한 반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저자가 강조했던 몬산토의 주가 (“1999년 2월 50달러에서 2000년 하반기에는 절반이하로 추락했다” (pp.476-477))를 통해 강조하고자 했던 유전공학의 폐기 (혹은 쇠퇴)는 오히려 저자의 표현과는 반대로 2008년 160달러에 육박했고 현재 (2019년 12월) 127.5달러에서 거래되는 만큼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미국 농림청 자료에 의하면, 미국 2018년도 햄버거 소비량 1인당 222 파운드 (약 100.7킬로그램) 으로, 지난 50년간 14% 증가 (https://qz.com/1171669/the-average-american-will-eat-the-equivalent-of-800-hamburgers-in-2018/) 했으며 (US Department of Agriculture (USDA)자료, 1990년에서 2018년도까지 붉은고기 (Red Meat) 생산량은 103억만 파운드로 66% 증가, 1인당 소비량은 12% 증가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비단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UN 자료에 의하면, 전세계적으로는 육류생산량은 지난 50년간 약 4배가 늘어서 현재 매년 3억2천만톤이 생산되고 있으며 (https://ourworldindata.org/meat-production, 2013년 기준), 이중 아시아가 40~45퍼센트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1961년 유럽과 북미는 각각 42% 25%, 아시아는 12퍼센터였던 데 반해, 2013년 육류생산지 비율은 유럽이 19%, 북미가 15%로 퍼센트 생산 점유율로 심지어 같은 기간 유럽은 두 배, 북미는 2.5배, 카리브해 지역이 3배 증가했음에도 다른 지역은 대략 5배 이상의 증가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20년 전에 세상에 나온 “육식과 채식에 대한 오해”는 해소되었음에도 불구, 육식 위주의 생활은 여전히 인간의 건강과 지구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오래된 책이라서 그럴 수 있겠다 싶으나 <존 로빈스의 음식혁명>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간단하지만 생각보다 간단하지는 않다. 오해를 풀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이상적일 수는 있지만 현실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책에서 여러 번 직간접적으로 (20년전의) 유럽이 (바람직한) 미래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유럽에서조차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폭발적인 인구증가와 산업발전, 그리고 인간의 욕심이라는 변수들을 모두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1950년 25억 만 명에 불과(?) 하던 인구는 2000년 현재 60억, 2025년에는 80억 명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되며, 산업이 발달하면서 이전에는 채식위주의 공동체에서조차 육식위주의 삶으로 바뀌고 있는 점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논의의 출발이 된 미국 역시 1차,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라는 지위와 더불어 육류의 소비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점은 육식위주의 삶이 소위 말하는 "더 나은 삶"의 지표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단순히 “육식주의 vs 채식주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로 본다면, 소수자 인권이나 윤리, 자연보호, 탄소배출, 동물복지 등의 문제가 주로 선진국 클럽에 한정해서 논의가 되고 있다는 점은, 이제 막 절대 가난의 터널을 통과해 공업화를 시작하는 나라들에게 강력한 탄소배출 정책을 요구하는 선진국의 이중적인 면과 다르다고 하기 어려우며, 책 안에서 부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는 미국 방송국에서 로빈스의 삶을 방영했던 것과 같은, 어떤 면에서는 소부르주아적 나르시즘 혹은 허위의식의 한 면이라고 비판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로고스에서 파토스로, 신에서 인간으로, 이성에서 감성으로, 시각에서 다른 감각으로, 과학에서 다시 신화로 등의 전환이 정말 인간의 발전 과정에 의한 것인 것, 아니면 단순히 현재의 인간이 걸어가고 있는 현재를 설명하는 수사에 불과한 지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역사가 단선이 아니라면, 우주가 하나가 아니라면 우리가 지금 논의하는 모든 것들 것 여전히 한 사회의 단면에 불과할 수 있는, 즉 여전히 하나의 편견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혁명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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