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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봉수 Mar 23. 2020

코로나19 + 아일랜드 전환학년 이야기

<흥미진진한 아일랜드 전환학년 이야기> 를 중심으로


<흥미진진한 아일랜드 전환학년 이야기> (제리 제퍼스, 최상덕 역, 살림터, 2018)를 중심으로



영국유학원을 오래하다보니 다른 유럽과 영국을, 미국과 영국을 비교할 일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든게 미국 위주이다보니 주로 미국과 다른 점을 생각하게 되고, 대개의 사람들도 영국은, 미국과 다른 유럽, 그 중의 하나로 인식이 되는 경우가 많죠. 안으로 들여다보면 유럽내에서도 각국의 차이가 크고, 심지어 같은 나라안에서도 여러가지 이슈가 있는데 잘 보이지 않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으면, 그에 대한 생각도 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으면 그로부터 뭔가 아이디어를 가져올 수도 없으니 말이지요.










<흥미진진한 아일랜드 전환학년 이야기>는 보통은 "영국보다 조금 부족한 아일랜드"의 "새로운 아일랜드"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인 "전환학년" (Transition Year)에 관한 사례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일랜드는 오랜 시간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았고, 언어도 게일어가 아닌 영어를 더 많이 쓰다보니 "대충 영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쉬운 아일랜드지만 자신들의 약점을 어떻게 새로운 장점으로 승화시켜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기도 하지요.



아일랜드 전환학년은 커리큘럼이 정해져있지 않은 1년을 말합니다. 커리큘럼이 정해지지 않은만큼 학생과 학교, 교사의 자체적인 역량이 중요하고, 객관적인 평가기준이 없는만큼 준비와 수행능력, 자질과 의지에 따라 결과가 크게 차이가 난다고 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학교를 다니다가 1년 정도 "강제적인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하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강제는 아닙니다)



제가 아는 범위내에서 아일랜드의 교육제도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이 다른 나라에 세웠던 식민지와 동일한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아일랜드는, 가슴아픈 일이기는 하지만 영국이 세계 최고로 올라 어느 정도 여유가 있기까지 영국의 식량창고 역할을 하면서 (일본이 우리에게 했던 방식이기도 하죠) 기술전수 위주의 교육만을 제공하기도 했었습니다. 근대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중등교육도 뭔가 좀 허술한 방식으로 운영되었던 것도 그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현재처럼 고등학교 과정에서의 다양성이 적용된 것도 비교적 최근인 1994년이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유럽에서 순이민 (인구유출)이 가장 많았던 유럽의 최빈국 중 하나였던 아일랜드가 지금의 아일랜드로 탈바꿈하게 된 이유중의 하나는 자신들이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지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수많은 문학작품들도 아일랜드의 아픔을 기반으로 탄생했다고 하기도 했죠. 아닌게 아니라 교육제도 면에서도 뭔가 허술하게 설계된 제도를 구체화하고 빈공간을 장점으로 바꾼 케이스가 아일랜드의 고등학교 교육이고, 그 중심에 "전환학년"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일랜드 교육제도는 옆나라 영국에 비해서, 혹은 다른 유럽국가와 비교해, 영국식과 유럽식의 사이에서, 기간도 좀더 짧고 (12년), 허술한 감이 있었는데, 짧은 기간을 "전환학년"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채워넣고, 고등학교 과정을 다시 전공영역별로 LC, LCVP, LCA 등, 공부에 집중해서 대학으로 가는 학생과 기술과정에 집중하고 싶어하는 학생 등으로 세분화 전문화하면서 다른 나라의 교육제도와 비교해 더 창의적인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아일랜드의 전환학년과 관련해서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과도 비교를 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전문대학교에 비해 종합대학교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전문대학교와 달리 휴학이 좀더 자유롭고, 지금껏 시험만 바라보며 달려왔던 학생들이 자기자신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공식적으로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아일랜드 전환학년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전환학년 학생들의 장점도 거기서 찾을 수 있지요.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은 특히나 영국교육과 비교해볼 때 흥미롭다고 할 수 있는데요, 제가 아는 범위에서 영국교육을 이끌어가는 모델은 사립학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공공"이라고 생각했던 (그래서 여전히 대문자로 Public School이라고 쓰면 영국 사립학교를 의미하죠), 투박하게 말하자면 영화 <해리포터>에서 볼 수 있듯 학교와 교사의 주도하에 특별한 경험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영국 사립학교의 특징이고, 어떤 면에서는 르네상스 시절의 모범처럼 오랜 전통을 통해 자신들의 장점을 극대화시켜 "미래사회의 완벽한 리더"를 만드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이에 반해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은 영국식의 소위 엘리트 교육이 아닌, 교육학 책에서나 봤던 "학습자 스스로의 동기에 기반한 교육"이라는 점에서 보다더 현실적이고 창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유명한 예술가에게 직접 사사받는 형식이 영국식 교육이라면,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은 그 정도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동네 예술가들을 모아서 함께 생활해보는 방식이라고 할까요?



코로나로 인해 강제적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며 전환학년에 대한 생각이 더 강하게 든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기왕 쉬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불어 9월학기로 옮기자는 논의가 꾸준히 있어왔던 것을 감안한다면 반강제적으로 쉬어야만 하는 이 상황에서 학교와 사회가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을 전 학년에 걸쳐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코로나 때문에 취소되지만 않았다면 아일랜드 학교들에서 전환학년을 운용하는 것을 직접 점검해볼 수 있었던 기회가 날아간 것이 아깝기도 한데요, 그럼에도 불구, 정리해본다면,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은 기존의 "공부에만 집중하던" 학생들에게 세상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학습 스트레스 가운데 스스로 판단하고 숨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점, 그리고 정해져있지 않은 커리큘럼을 통해 창조적인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일랜드의 특화된 교육제도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시사하는 점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수한 성적을 받아 경쟁에 이겨 성공해야 한다는 학생들의 압박감이 커질수록 교육체계는 점차 학업 중심의 따분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압박으로 인해 학교 또한 점점 바깥세상과 단절되고 학생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살아가게 될 세상은 어떤 곳이고 언제 사회에 기여해야 할지, 그 사회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잠시 서서 곰곰이 생각할 겨를이 좀처럼 없다. 따라서 교육과정 중간 어디쯤에서 1년간 따분한 교육을 멈추고 학생들이 학업에 대한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의 성장을 도모하고 지역봉사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하자는 제안을 했다. (Burke, R. 1974. <흥미로운 아일랜드 전환학년 이야기>, 책 p.90 에서 재인용)



"교육에서 예술의 역할을 확신하고 지속하고 확장하려면 교육 표준화 같은 것을 단념해야 한다. 교육 표준화는 예술에 대한 인간 개개인, 때로는 인간 집단의 반응뿐 아니라 예술을 불러일으키는 다양성 충만함 인간성을 사그리 쓸어버린다. 더 나아가 예술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더 깊이 배워야 한다. 예술을 통해 우리가 세상 속에서, 또 세상과 어떻게 오롯이 관계를 맺는지, 어떻게 타인과 타인의 잠재력에 주의를 기울이고 마음을 여는지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Greene. M. 2013, <흥미로운 아일랜드 전환학년 이야기>, 책 p.129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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