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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봉수 Apr 13. 2020

[코로나19] n번방. 살아갈 수 있는 근거


코로나19, n번방. 살아갈 수 있는 근거




지난 두 달,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를 꼽으라면 아마도 코로나19와 n번방이 아닐까 싶다. 그 보다 더 중요한 일들도 있었을 수 있겠지만 이 두 가지보다 더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닿았던 주제가 또 있을까? 그 중 코로나19는 한국뿐이 아니라 전세계를 가장 처절하게 만든 주제. 그리고 그 두 가지의 이면은 “공포”가 아닐까?




공포는 “무섭고, 두렵다”는 뜻이다. 더불어 공포는 대개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사용된다. 내눈 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늑대들이 나를 잡아먹을 수 있다는 감정, 그게 공포다. 비슷한 크기의 훈련된 개들 옆에서 웃을 수 있는 건 그 개들이 나를 잡아먹지 않을 것이라는 감정의 반대. 결국 공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이며, 두려움의 강도는 불확실성에 따라 좌우된다. 고속도로에서 반대 차선을 맹렬히 달리는 자동차를 지나쳐 갈 수 있는 것은 그 차가 나를 향해 방향을 꺽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라는 전염병에 전세계가 공포에 빠져든 것은 바로 그 불확실성 때문이다. 언제든 감염될 수 있고, 감염된 것도 모를 수 있고, 그래서 나와 내 주변이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공포. 현실적으로 치명률이 독감보다 높으냐 낮으냐의 논란은 사치다. 공포가 시급성, 위험성, 그리고 예측가능성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면 코로나19는 여기에 딱 맞는 사례가 될 수 있다.



 <사진1. 사회적 거리두기를 무시하고 클럽에서 춤을 추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저들을 통해 나와 내 가족이 언제라도 죽음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전혀 다른 사안이지만 n번방의 공포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가해자들은 형법이 정한 최대 한도와 최저 한도를 예상해서 대비할 수 있는 반면, 피해자들은 어디까지 갈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설령 가해자가 법정 최고형을 받는다고 한들 피해자들은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n번방의 변종이, 유사사례가 지금껏 있어왔다는 사실만으로, 피해자들의 공포는 비단 n번방의 직접적인 피해자들 뿐만 아니라 대상이 될 수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염된다.





<사진2. 영국드라마 <블랙 미러>. 이른바 몸캠피싱으로 인해 은행강도에 이어 살인, 자살로 이어지는 이야기. 피해자들은 자신이 결국 사회에서 버려지는 것에 대한 공포로 인해 자포자기 상태가 된다>




정부가 잘 공급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사재기를 멈춰달라는 트럼프의 약속이 작동하지 않는 것은 한국시민이 미국시민보다 나아서가 아니다.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일부에서 보였던 사재기의 모습은 “내일도 쌀을, 라면을, 생수를 구할 수 있다”는 확인을 통해 진정될 수 있었다. 코로나19의 확진자는 그 순간에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늘고 있었지만 분명한 감염경로를 공개함으로써 위험지역과 위험도를 확인할 수 있었고, 위험지역과 위험도를 점차 낮춰가는 과정을 통해 점차 안정되어 갔다.




현재 시점에서 한국은 코로나19의 안전지대가 아니지만, 최소한 한국내에서의 코로나19는 예측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관리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피로도는 점점더 삶을 힘들게 하지만, 내 주변에서 갑작스레 확진자가 나올 확률은 현재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낮은 곳이 한국이다. 쉽게 말해, 세계적 판데믹에도 불구 비교적 한국이 조용할 수 있는 건, 최소한 내 옆사람이 코로나19의 핫스팟이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n번방을 비롯한 성착취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건 바로 내 옆의 사람이 비슷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 연루되어 있을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말처럼, 비록 어제는 아니었을지라도 내일은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함과 그리고 피해자가 되었을 때 회복될 수 없다는 공포가 자리한다. n번방이라는 모호한 작명 뒤에서 숨겨진 성착취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질병이 아닌 범죄라는 차이에서 오는 분노와, 여전히 관리되지 않고 있고 사회적 합의가 보잘 것 없다는 점에서 오는 공포는, 코로나19로 인해 시스템이 망가져가는 여러 나라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사진3. 텅 비어있는 세계 1위 나라의 진열장. 사재기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 n번방 성착취 디지털 성범죄 사건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지불해야하는 비용의 다른 표현이다>




코로나19는 새로운 전염병이 창궐하는 상황에서 국가의 운영 능력을 시험한다. 그리고 n번방 성착취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둘러싼 논의는 인간존엄에 대한 사회의 기본적 감수성을 시험한다. 두 가지는 다르지만, 두 가지 모두 해결점은 같다 (어디 두 가지 뿐일까). 사회 구성원이 합의에 의해 처벌할 것은 처벌하고 막을 것은 막고 피해입은 것을 서로 돌봐주는 일. 그게 국가가 할 일이고, 리더가 이끌어갈 방향이고, 공동체로서 우리가 옆사람을 믿으며 살아갈 수 있는 근거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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