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
스마트폰의 이메일함을 열어본다.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스팸메일조차도 오지 않는다. 노트북을 집어 들고 카페로 향한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수정해서 다시 보내 볼 생각이다. 집 근처의 카페들은 이제 눈치가 보여 오늘은 한 번도 간 적 없는 카페로 가기로 한다. 한참을 걸어 찾은 와이파이가 제공되는 카페 안으로 들어선다. 대학가 근처라 그런지 제법 사람들이 앉아 있다. 자리가 없을까 봐 조바심으로 앞사람의 주문이 빨리 끝나길 기다리며 카페 안을 둘러본다. 청춘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즐거워 보인다.
아메리카노 스몰 사이즈 컵을 들고 자리를 찾아본다. 좋은 자리는 이미 다 사람들이 차지했다. 화장실 옆 빈자리가 보인다. 얼른 걸음을 옮겨 앉아 노트북을 가방에서 꺼내렸는데.
"아저씨, 여기 저희 자린데요."
올려다본 얼굴은 앳된 사내 하나가 인상을 찡그리고 서 있다. 옆에는 작은 눈을 가능한 한 크고 동그랗게 보이려 짙은 화장을 한 젊은 여자가 서 있다.
"여기 아무것도 없었는데." 난감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여기 저희 자리예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앳된 사내가 팔짱을 끼고 내려본다.
"아니, 여기 아무것도 없었다고 학생. 그러니까 여기가 어떻게 학생 자리야?"
"이 아저씨가 진짜! 여기 아까 방금 저희가 앉았다가 아주 잠깐 일어난 사이에 아저씨가 와서 무단으로 앉았잖아요! 어이가 없네 진짜!"
옆에 서 있던 여자가 찢어질 듯 짜증 섞인 하이톤으로 느닷없이 소리친다.
꺼내던 노트북을 가방에 도로 넣고는 일어선다.
"그러니까! 어떻게 여기가 학생들 자리야!"
삐- 하는 이명이 왼쪽 귀를 통해 뇌를 지나 오른쪽 귀로 들린다.
어느샌가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온다. 그리고는 저쪽에 자리가 하나 났다고 말한다. 그 젊은 커플이 자리를 확인하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냥 가버린다. 너무도 황당하고 기분이 나빠져서 그 자리에 서서 걸어가는 그 커플의 뒷모습을 노려본다. 그러다, 주변의 시선이 마치 꼰대 하나가 소란을 피운 것 같은 시선이 느껴져 자리에 조용히 앉는다. 노트북을 켜서 파일을 열었지만, 머릿속에 아까의 상황만이 맴돌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노트북 화면 속에 아까 그 커플의 머리를 노트북으로 내려찍는 상상으로 가득해진다. 또다시. 귓가에 속삭임이 들려온다.
'왜 자꾸 무시만 당해. 병신같이. 그냥 죽여버려. 쉽잖아. 그냥 죽어버려. 죽어버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진짜 죽여버릴까?" 말이 새어 나온다. 건너편 자리의 여성의 놀란 시선이 그녀가 마시고 있는 커피잔 너머로 느껴진다. 얼굴을 쓱쓱 문질러 닦아내고 자기소개서를 천천히 읽어본다. 몇 줄을 수정하고 나서 여기저기 구인 사이트들에 희망을 담아 이력서를 뿌린다. 이번엔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을 안고 다시 마음을 추슬러본다.
매정하게 눈치를 주는 카페에서 어쩔 수 없이 나왔다. 벌써 어둑어둑해진 거리를 걷다 출출함을 달래려 편의점에 들어선다.
뜨거운 물을 부은 컵라면이 익기를 창가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왜,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살인범이 되는지 조금은 이해가 돼, 아주 조금은."
편의점 유리에 비치는 초췌한 얼굴을 어루만지며 혼자 중얼거린다.
후루룩 짭조름한 반쯤 익은 라면의 면발을 입안 가득 끌어올려 씹으며 생각한다.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범죄자는 아니지, 내가 무슨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난 다시 저 안으로 돌아갈 수 있어. 그래야만 해.'
들이켠 뜨끈한 컵라면 국물이 차가운 마음과 몸을 동시에 따스하게 데워 주는 것 같다. 누군가 놓아둔 것인지 버리고 간 것인지 모를 명함 크기의 전단이 눈에 들어온다. 집어 들어 본 전단에는 문구가 하나 적혀있다.
'그는 피곤한 자에게 힘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능력을 더하신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쳐 버릴 그런 전단이지만, 지금은 이 문구만이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다. 난 그 전단을 지갑에 넣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거리로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