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수사관 Ep. 7 - 미스터리 범죄 초자연 수사 스릴러 소설
정확히 오후 3시가 되자 전화벨이 울렸다.
“네, 길 형사님.”
“내려오시죠.”
나는 장비들이 들어 있는 백팩을 들춰 멘 후 커다란 삼각대를 집어 들고선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공동 현관 밖으로 나오자 낡은 구형 흰색 소나타 운전자석의 조금 열려 있던 창문에서 손 하나가 나오더니 오라 손 짓 했다.
나는 조수석 문을 열었다.
운전석에 앉아있는 형사는 나의 예상과 정반대로 너무나도 아름답고 앳된 얼굴의 여성이었다.
“길 형사님 맞으시죠?”
“네, 길교하입니다. 짐은 뒷좌석에 놓으시죠.”
나는 뒷좌석에 배낭과 삼각대를 조심스레 올려 두었다.
조수석에 오른 나는 정중하게 다시 인사를 건넸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네, 가죠.”
앳되고 예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게 색이 바래 낡은 옛날 국방색 커다란 야상을 걸치고 있었다.
길 형사는 삐딱한 자세로 앉아 핸들 위에 올린 손목만으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 핸들 너머로 젖혀져 있는 반쯤 펴진 손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과 굳은살이 배겨 있었다.
“영혼을 믿나요?” 길 형사가 힐끗거리는 나를 보며 말했다.
“지금은 믿습니다.”
“그 말은 전에는 네거티브라는 거죠?”
“반반이었습니다.”
핸들에 올린 오른 손목을 왼 손목으로 바꾸며 몸을 콘솔박스에 기대며 길 형사가 말했다 “치킨 땡기네.”
“이따 드시죠. 반반으로… 제가 쏘겠습니다.”
“매일 방송하시죠?”
“거의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에 미제사건 특히 실종과 살인 사건 참~ 많죠” 길 형사가 나를 곁눈으로 쳐다봤다.
“그래서 형사님이 계신 거 아닙니까.”
“네~, 그 말씀은 그래서 내가 밥벌이가 가능하다는 소리로 듣죠.”
“아니요!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이 아닌데요.”
“네에~, 피 같은 국민의 혈세로 월급 받으니 발바닥에 물집 터져라 불철주야 졸라게 수사해야죠.”
나도 살짝 오기가 발동했다. “모든 경찰 제복 입으신 분들이 길 형사님만 같았으면 형사님은 경찰 안 하시고 배우나 모델 뭐 그런 거 하고 계실 겁니다. 어쩌면…”
길 형사가 피식 웃는 것 같았다.
“이런 일 왜 하시죠?” 길 형사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돈 벌려구요.”
길 형사의 시선이 앞만을 보고 있는 내 옆얼굴에 느껴졌다.
“형사님은 왜 이 일 하세요?”
“저도 돈 벌려고 하죠.”
“네 그러시구나. 모든 직업의 최우선 목적은 돈을 많이 버는 거니까” 나는 길 형사를 보았다.
길 형사의 아름다운 눈은 웃고 있었지만 도톰하고 붉은 입술은 굳게 다물고 있었다.
“형사님이 이 일을 하시는 두 번째 이유 같은 거 있으세요?”
길 형사는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윤기가 흐르는 다홍빛 아랫입술을 문지르며 말없이 운전을 했다.
“저는 있어요.” 길 형사를 보았다.
길 형사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운전만 하고 있었다.
“관심 없다는 의사 표현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나도 굳게 입을 닫은 채 앞만 보며 어색하게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더 달리고 나서야 길 형사의 낡은 소나타가 오래전부터 방치된듯한 허름한 시골집 앞에 정차했다.
“내리죠” 길 형사가 차에서 내렸다.
나는 뒷좌석의 장비들을 챙겼다.
“이 집이 피해자 집인가요?” 나는 카메라를 켰다.
“촬영은 하시는 데, 방송에는 정보가 노출 안되게 모자이크 처리 꼭 하시고 내보내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는, 근데 여기 빈 집 아닌가요?”
“대부분의 피해자 가족분들은 그 집에서 오래 살지 못하죠. 거의 다 이사 가시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휴~, 왜 피해자 가족분들이…, 참…”
“여기 오른쪽이랑 왼쪽에 두 집이 말씀하신 옆집들이네요.”
“이제 뭘 하면 될까요?”
“탐문해 봐야죠.”
“그 자수정 팔찌는 어떻게 찾아요?”
“그건 수색영장 있어야 가능하죠.”
“그럼, 수색영장 가져오셨나요?”
“이미, 피해자 주변 분들 오래전에 조사 다 받으셨고 무혐의들 받으셨다죠.”
“그 건 그때 일이구요. 결국 미제 사건 됐잖아요.”
길형사는 내 말은 귀등으로 듣는 둥 마는 둥하며 힘차게 오른쪽 집으로 걸어갔다.
그 집의 열린 대문을 두드리며 길 형사가 안을 살핀다.
“계세요?”
집 안에선 아무런 인기 척이 없다.
“저기요. 저 집으로 가 보시죠” 나를 돌아보며 길 형사가 반대편 집을 가리켰다.
나는 피해자의 집을 지나 왼쪽 편 집으로 걸어갔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집의 철로 만들어진 낡은 파란색 대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녹슨 대문의 파란색 페인트가 떨어져 나가며 삐걱거렸다.
“아무도 안 계세요?” 나는 담 넘어 고개를 한껏 빼서 소리쳤다.
“여기도 아무도 안 계시나 본 데요.”
뒤돌아 본 오른쪽 집 대문 앞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형사님?” 오른쪽 집으로 향해 조심스레 걸어가며 속삭였다.
집 밖으로 나오는 길 형사가 말했다.
“왜, 속삭이죠?”
“아니, 안 보이셔서…”
“저 집도 아무도 없어요?”
“그런 거 같아요.”
길 형사가 왼쪽 집 닫힌 대문을 세게 두드렸다.
그러자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조금 열렸다.
길 형사가 대문을 조심스레 밀며 들어섰다.
“계세요?”
낡은 파란 대문이 삐익하며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나는 길 형사를 따라 마당으로 들어섰다.
온갖 농기구와 잡동사니들이 좁은 마당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반투명 유리가 끼워진 알루미늄 새시로 된 문을 길 형사가 두드렸다.
“안에 계세요?”
나는 마당을 촬영하고 있었다.
길 형사가 조심스레 새시 문을 열어 안을 보고 있었다.
나는 집안을 촬영하기 위해 얼른 다가갔다.
“엇! 이게 무슨 냄새지!” 나는 코를 막았다.
역한 냄새가 집안에 가득 차 있었다.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은 길 형사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방안에는 진한 노란색 액체가 담긴 커다란 소주 페트병들이 즐비하게 줄 세워져 놓여 있었다.
섬뜩한 흉가 같은 모습의 방안에는 곰팡이가 피어 불룩해진 천정의 벽지와 누렇다 못해 검게 변한 벽면 그리고 언제 빨았는지 모를 더럽고 해진 이불과 흙먼지가 가득한 방바닥에는 음식물 찌꺼기와 쓰레기들이 한데 엉켜 있었다.
나는 카메라 앵글을 빠르게 움직이며 줌 인과 줌 아웃해 가며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구석구석 꼼꼼하게 촬영했다.
길 형사가 방 한 구석에 있는 작은 문을 힘겹게 열었다. 옛날 아궁이 부엌이 힐끗 보였다.
길 형사가 부엌으로 허리를 숙여 넘어갔다. 나는 방안을 촬영하고 있었다.
“여기!” 길 형사가 부엌에서 소리쳤다.
나는 작은 문으로 허리를 숙여 들여다보았다.
“뭔가 있어요?”
“이거 빨리 찍죠!”
나는 급하게 부엌으로 넘어가다 그 낮은 문 서까래에 등이 긁혔다.
참을 수 없는 아픔이 밀려왔다.
“이거 찍으시죠” 길 형사는 부뚜막 한 구석에 있는 작은 항아리 뚜껑을 들고 서 있었다.
나는 아픈 등을 만지려 팔을 뒤로 하고 있었다.
“뭐 해! 빨리 이거 찍으라니까!”
아픔을 참으며 서둘러 다가갔다.
카메라의 조명을 항아리 안쪽으로 모으자 무언가 반짝였다.
소금 속에서 연보라 빛의 물체가 조명의 빛을 반사하며 반짝반짝 빛났다.
나는 무심결에 항아리 안으로 손을 넣으려 했다.
길 형사가 나의 손목을 잡았다.
“절대로 만지면 안 되죠! 증거물 오염됩니다.”
“죄송해요. 나도 모르게 그만…”
그때였다. 마당 쪽에서 철 대문이 열리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길 형사는 항아리의 뚜껑을 닫고 집어 들었다.
“누군겨!”
부엌문 너머로 쉰 목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부엌문이 열렸다.
키가 작고 마른 왜소한 체형의 사내가 서있었다. 머리에 농약으로 보이는 브랜드가 적힌 지저분한 모자를 쓰고 있었다.
“당신들! 여어서 뭐 하는 겨어?”
길 형사가 신분증을 보이며 다가갔다.
“경찰입니다. 이 항아리 주인 되십니까?”
“경찰이 쥐새끼 만 양 아무도 없는 부엌엔 왜 숨어 들은 겨?”
그 사내의 손에는 날이 서있는 낫이 들려 있었다.
“수사 차 잠시 들어왔습니다. 당신이 이 항아리 주인 맞죠?”
“아니~, 영장은 있는 겨!”
“발부 중입니다. 주인 맞으시죠!”
“그 말은~ 지금은 업다는 거잔오~어! 안 그려?”
분위가 험악 해져 갔다.
나는 천천히 카메라를 내렸다.
“당신도 경찰인겨?” 낫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네? 아… 저는…”
“잠시 나가시죠!” 길 형사가 그 남자에게 다가섰다.
그러자 그 남자가 낫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 씨불 것들이 그냥~ 또 와서 지랄 옘병을 떨라 하네에!”
낫을 마구 휘두르며 남자가 부엌 안으로 소리치며 성큼 들어섰다.
길 형사가 뒤로 피하며 나를 밀쳤다. 그 바람에 카메라의 꺼둔 조명이 켜지며 그 남자의 얼굴을 비췄다.
그 남자가 가느다란 팔뚝으로 눈을 가리자 길 형사가 앞차기를 남자의 명치를 향해 날렸다.
그 힘에 뒤로 밀린 남자가 부엌의 높은 문지방에 걸려 부엌 밖 마당으로 벌렁 넘어졌다.
길 형사는 손에 들고 있던 항아리를 나에게 건네주더니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길 형사는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낫을 들고 있는 남자의 손목을 걷어찼다.
하지만 낫은 여전히 그 남자의 손에 들려 있었다.
길 형사가 다시 걷어찼지만 남자는 몸을 돌려 길 형사의 공격을 피하더니 일어섰다. 그리고 낫을 길 형사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순간 남자는 흙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낫으로 공격한 남자의 팔을 낚아챈 길 형사의 금메달급 업어치기 한판이 모든 상황을 순식간에 종결시켰다.
길 형사는 재빠르게 신음하며 쓰러져 있는 남자의 팔을 뒤로 꺾어 수갑을 채웠다.
눈앞에서 펼쳐진 현실감 없는 업어치기 한판이 나를 난생처음 히어로물을 본 아이처럼 만들었다.
남자를 제압한 길 형사가 지원 요청 전화를 걸었다.
나는 모든 상황을 카메라로 쉬지 않고 녹화했다.
그 남자는 지원 나온 순찰차로 인계되었다.
길 형사와 함께 도착한 경찰서 취조실엔 벌써 이송된 남자가 수갑을 차고앉아 있었다.
길 형사가 다른 경찰들에게 양해를 구해줘서 나도 취조실 매직미러 뒤쪽 관찰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길 형사가 노트북과 몇 가지 물건들을 들고 취조실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은 길 형사가 항아리에서 채취한 팔찌가 들어있는 증거물 보관 지퍼백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안윤철 씨, 이거 어디서 났습니까?”
모자가 벗겨진 남자는 앙상한 얼굴에 다크서클로 퀭한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이거 어디서 취득했는지 묻습니다.”
차분한 목소리의 길 형사가 노트북을 열어 무언가를 타이핑했다.
“지금은 묵비권 행사가 오히려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수갑 찬 손으로 듬성듬성 나아 있는 머리카락을 흩으며 안윤철이 입을 열었다.
“주섰슈.”
“살인 후? 살인 전?”
“내가 안 죽였슈~, 전에도 다 말했구먼!”
“그럼 이건 당신이 왜 가지고 있는 겁니까?”
“아~, 징짜루다가 화안장하겠네에, 내 말은 내가 그 지꺼리 안 했다는 겨어!”
“그럼 이게 왜 당신 부엌 항아리 속에 있습니까?”
고개를 떨구며 남자가 입을 열었다.
옆집 딸내미가 중학교 때 서울로 유학을 갔고 여름방학 때마다 내려왔다고 했다. 그 아인 싹싹하고 예쁜 아이였다고 했다. 그 아이가 한동안 안 보이다 어느 날 내려왔는데 대학생이 되어 집에 왔다 한다. 대학생이 된 여자 아이가 너무 예뻤다 했다. 키도 크고 몸매도 늘씬하게 큰 그 아이가 자신에게 처음으로 웃어준 성인 여자라고 했다. 그 남자는 면에 있는 다방에서도 냉대를 받았는데 그 대학생이 된 아이는 집 앞에서 만날 때마다 너무나도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 주었단다. 이장네 밭농사를 도와주고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나무 언덕 근처를 걷고 있는 그 옆집 여대생을 보았고 다가가 말을 걸었다고 한다. 그날도 친절하게 대해 주는 그녀가 혹시 자신에게 관심이 있나 생각했다고 했다. 그리고 뽀얗고 하얀 예쁜 얼굴과 허벅지를 보자 끓어오르는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한 번 안아보려 했단다. 그러자 그녀가 완강하게 저항을 했다 한다. 약해 보이던 여자가 소리치며 강하게 저항하는 탓에 체구가 작은 안윤철은 놀라 그 자리에서 도망쳐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정신없이 도망쳐 집에 와 보니 자신의 손에 그 팔찌가 들려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 근처 논두렁에서 옆집 여학생은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겁이 난 안윤철은 부엌 구석진 곳에 놓아둔 소금 항아리 속 깊숙이 그 팔찌를 숨겼다고 했다.
도주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 한 길 형사는 재수사를 위해 그 남자를 긴급 체포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결과가 궁금해진 나는 길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길 형사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네, 여전히 잘 버티고 있죠. 아, 방송도 잘 보고 있습니다. 근데, 왜 요즘 그 논두렁에는 안 가시죠?”
“그렇지 않아도 내일 새벽에 주 형사님하고 가려구요. 혹시 안윤철은 어떻게 됐나요?”
“일단 무혐의로 풀려났죠.”
“네? 진짜요!”
“현장에서 검출된 DNA랑 불일치고 거짓말 탐지기 결과랑 프로파일러들 모두 거짓말하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 다나 뭐래나… 씨…”
“DNA가 있었어요?”
“네, 다시 해봤는데 안 맞았죠.”
“그래도 팔찌는 빼박 증거 아닌가요!”
“그니까… 그놈의 무죄추정의 원칙… 시이발... 누가 그거 몰라서…”
수화기 너머 길 형사의 입에선 말끝마다 욕이 나왔다.
“이따 새벽에 시간 되시면 저랑 현장 가보실래요?”
“오늘요? 몇 시죠?”
“01시에 현장에서 뵐까요? 주 형사님도 가실 겁니다.”
“그래요? 오랜만에 주 형사나 볼까 그럼…”
“그럼 오시는 걸로 알고 있을 게요.”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세 사람이 미제 사건 현장에 모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