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이 뛰어나도 잘릴 수 있어요. 정말이에요.
지난 글에서 외국계 기업의 장점을 이야기했으니 이번에는 단점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단점 1. 낮은 Job Security
통상 (노조가 쌘) 유럽계 기업은 좀 덜하긴 한데 미국계 기업은 확실히 "사람"보단 "주가"인 거 같다. 링크드인을 들어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요즘 특히나 "Open to Work"로 자기 상태를 해 둔 외국 친구들이 많다. 그만큼 시국이 어렵다는 뜻이겠지.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그렇다, 외국계 기업의 가장 큰 단점은 Job Security, 즉 직업 안정성이 낮다. 회사의 상황, 전략에 따라(특히 주가가 떨어질 때) 조직을 정리하는 일이 많고 그럴 경우 어떤 조직은 통째로 날리거나 절반 이상을 줄이는 경우도 많다. 한국 기업 같으면 이런 경우 이 인력들을 다른 조직으로 재배치하거나 해서 바로 내보내지는 않지만 외국계의 경우 아무리 다른 팀에 자리가 있어도 해당 포지션에 딱 맞는 사람이 아니면 안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본인이 비어 있는 자리에 적합한 인재가 아니라면 아무리 그 팀 매니저와 관계가 좋아도 바늘구멍을 뚫기가 쉽지 않다. 물론 외국계 기업이라 하더라도 한국 근로기준법을 따라야 하니까 막 자르지는 못하겠지만 여튼 이런 결정들이 다른 한국계 기업보다 쉬운 것은 사실이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누구를 자르고 누구를 남기고의 의사결정이 개개인의 성과나 역량이 아니고 나라나 지역 등 특정 마켓의 성장 가능성에 따라 결정되다 보니 내가 아무리 일을 잘해 왔고 역량이 있더라도 몰려오는 폭풍우를 피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수영을 잘한다고 해도 거대한 쓰나미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달까. 여튼 어제까지 쿵짝을 맞춰서 즐겁게 일하던 내 옆의 동료를 속절없이 보내고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치지 않은 걸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단점 2. 쫀쫀하지 않은 인간 관계
두 번째 단점은 아무래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좀 덜 끈끈하다. 퇴직률이 높다 보니(위에서 언급한 해고(Layoff)로 인한 퇴직 말고도 타 회사에 좋은 자리가 나면 옮기는 일이 워낙 비일비재하다.) 서로 얼굴 보는 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정을 쌓을 기회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귀어 놓아도 어차피 나갈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면(나 역시도 언제든 나갈 수 있다는 마음이 있기도 하고) 특히 마음에 들거나, 각별히 나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 사람과는 업무적인 관계 이상으로 발전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또 하나 회식 문화가 국내 기업에 비해 빈도가 떨어지거나, 강제적이지 않거나, 점심에 하거나, 거나하게(?) 하지 않다 보니 내가 엄청 술을 좋아하거나 해서 그런 자리를 직접 만들지 않으면 팀 또는 회사 사람들과 사적으로 길~게 대화할 기회가 잘 없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전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재택근무가 워낙 일상이다 보니 특정 업무를 같이 진행하지 않으면 얼굴 볼 일이 많지 않아서 몇 년이 지나도 말 한번 섞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허다할 정도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고 직원수가 일정 규모 이상인 회사들은 동호회, 야유회, 워크샵 등을 활발하게 가지거나 입사 동기 모임을 가지거나 해서 다양한 친목 관계를 가질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국내 기업에 비해 내 노력 여하에 따라서 관계 형성 정도가 크게 달라진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단점 3. 너무 높은 지사장의 영향력
세 번째 단점은 지사장에 의해 너무 많은 요인들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빅테크들과 같이 한국에도 몇 백 명 이상의 많은 직원들을 보유한 지사야 재무, 인사 등의 백오피스 조직이 잘 갖춰져 있고 조직 문화도 본사의 그것을 잘 승계해서 한 사람에 의해 조직이 왔다 갔다 하지는 않는 구조이다. 하지만 1인 지사부터 수십 명 규모의 지사는 지사장의 성향, 의사결정 방향, 비전 등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사실 그 정도 규모의 지사는 다른 무엇보다 성과가 최우선 순위이기 때문에 매출, 이익 등 숫자만 잘 달성하면 본사로부터 간섭을 받는 강도가 낮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다 보니 단기적 성과를 올려야 하는 지사장의 입장 상 인화, 균형, 화합 이런 단어보다는 목표(본사에서 정해주는) -> 압박(심하면 매일매일) -> 결과(분기, 반기, 년)와 같은 순환 고리를 가져갈 수밖에 없다. 물론 비슷한 규모의 국내 중소기업도 비슷한 환경이겠지만 외국계 기업의 경우 엄연한 본사의 지침과 문화가 있음에도 물 건너 한국에서는 이런 것들이 지사장에 의해 많은 부분 무시되고 변질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조직문화도 지사장의 취향에 따라 주구장창 술만 마신다거나, 골프만 친다거나, 아예 회식이 없거나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지사장과 원래부터 잘 알거나, 천만다행스럽게도 취향이 잘 맞거나, 엄청난 적응력으로 다 맞춰 버리거나 해서 지사장과 코드를 잘 맞출 수 있다면 즐거운 회사 생활이 될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라면 좀 과장되게 말해서 지옥을 경험할 수도 있다.
단점 4. 단기 실적 압박
마지막 단점은 실적의 압박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년 단위로 성과를 측정하는데 반해 외국계 기업은 대부분 분기 단위로 성과를 측정하고 보고하는 체계이다. 어떤 회사는 2분기 또는 3분기 연속으로 실적을 맞추지 못하면 지사장을 해임하는 경우도 있다보니 지사장은 단기 성과를 죽도록 챙길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물론 그만큼 성과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취합하고 보고하는 체계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구조가 가능하긴 하지만 분기 단위로 숫자를 맞춰야 하는 것은 잠시의 쉴 틈도 없이 달려야 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이렇다 보니 개인의 잠재적 역량, 중장기적 미래를 위한 포석 이런 것보다는 빠른 시간에 성과를 내는 능력이 가장 중요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도, 기업도 없으니 모두가 선망하는 기업이라도 당연히 단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는 완벽한 회사를 찾는 것보다는 나에게 맞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생각하고 경험해 보고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마치 평생의 반려자를 찾는 여정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