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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리나 Dec 16. 2020

청소기

넌 내게 위안을 줬어! 


청소기 

[명사] 청소를 할 때 쓰는 기계.     



 얼마 전 로봇 물걸레 청소기를 샀다. 내 생애 두 번째로 산 로봇 청소기이다. 첫 번째는 15년 쯤  새로 나온 로봇 청소기를 산 적이 있다. 로봇 청소기가 나온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는데 나름 큰 결심을 하고 고액을 투자하여 샀었다. 하지만 몇 번 쓰지 않고 다시 곱게 싸서 창고에 넣어두었다. 원형으로 생긴 작고 앙증맞은 로봇 청소기였는데 청소를 하는 게 영 굼뜨고 힘이 없어 보였다. 문턱을 넘지도 못하고 같은 자리를 빙빙 돌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속이 타서 꺼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작년부터 물걸레 청소기의 명성을 듣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꼭 사라고 권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럼 사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로봇 청소기가 뭐 얼마나 만족스러울까 싶어서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그러다  물걸레질을 하기가 너무 귀찮아지면서 그럼 한번 사볼까 싶은 마음에 주문해보았다. 드디어 박스가 도착했다. 무거울 거라고 생각하고 힘을 주어 박스를 들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가벼워서 놀랐다. 꺼내보았더니 작고 앙증맞다. 아이들이 더 신나하면서 물을 집어넣고 걸레를 빨아 장착한 후 이리저리 리모콘으로 방향을 지시한다. 몇 번 해보더니 싫증이 났나 보다. 얼마 후 리모컨을 던져버리고 자기들 방으로 가버린다.      


  내가 물걸레 청소기를 작동시킬 때는 주로 부엌에서 일을 할 때이다. 무언가 나 혼자서만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자르고, 끓이고, 젓고 하는 중에도 가끔씩 부지런하게 물걸레질을 하는 로봇 청소기를 바라본다. 쉬지 않고 열심히 구석구석을 닦고 있다. 저리 바쁘게 다니는 청소기를 보니 묘하게 마음이 끌린다. 예전에 큰 애를 낳고 친정집에서 산후조리를 했었는데 아이가 두 시간마다 깨어 우니 밤에 도통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어김없이 아이의 우는 소리를 듣고 자다 깨었는데 아버지가 거실에서 운동을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반이었다. 새벽에  나만 잠 못 자고 있는 건가 싶었는데 아버지의 기척을 들으니 같은 공간에서 누군가 깨어있다는 사실에 별거 아닌데도 위안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부엌에서 물끄러미 로봇 청소기를 바라보는 시선도 비슷하다. 나 혼자만 바쁘게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너도 열심히  물걸레질을 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에 위안이 된다. 가끔씩 내 발치 근처까지 와서 앞뒤로 돌아다니는 게 마치 고양이가 붙임성 있게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물걸레 로봇 청소기에게 이런 마음을 느낄지 전혀 몰랐다. 이러다가 진짜 로봇이 나오면, 로봇과도 깊은 교감을 나누게 되는 것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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