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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리나 Dec 17. 2020

성탄절

성탄절을 앞두고 떠오르는 생각들


성탄절

    명사 기독교 12월 24일부터 1월 6일까지 예수의 성탄을 축하하는 명절. 우리나라에서는 12월 25일을 공휴일로 하고 있다.  



 달력을 보다가 성탄절이 다음 주라는 사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나버렸구나 싶다. 어릴 적 기억 속의 성탄절은 축제와도 같았다. 성당에 다녔기 때문에 전날부터 여러 행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성가대회와 연극제에 참여했던 일, 성탄절 전날 밤을 꼬박 새운 후 새벽에 골목길을 돌며 성가를 불렀던 경험이다. 12월의 중반부가 넘어서면 언제나 성탄 행사 준비로 들떴다. 지역별로 성탄절 전날 열리는 합창대회 준비도 그중 하나였다. 매일 저녁, 자율학습을 끝내자마자 성당으로 달려가 성가 연습을 하곤 했다. 고등학교 때는 성탄절 연극에도 참여했다. 나의 역할은 막달라 마리아였다. 대사는 딱 한마디였다. 그 한마디를 하는 것도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연습할 때마다 이상할 정도로 목소리가 높거나 부자연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성탄절을 기대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성당에서 친구들과 밤새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탄절 전야는 공식적으로 밤을 새워도 되는 날이었다. 친구들과 성당에서 밤새 있다가 새벽에 교인들의 집 앞을 다니며 성가를 불렀다. 문을 열고 나와서 먹을 것을 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돌아와 성탄 오전 예배를 마친 후 그때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처럼 성탄이라고 선물이 머리맡에 놓이는 일은 기대할 수 없었지만 성탄절 전날부터 당일까지의 일을 생각하면 충분히 즐겁던 시절이었다. 몇 주전부터 미리 손으로 카드를 만들어 친구들과 서로 나누어가졌다.


 어른이 되어서 맞이하는 성탄절은 어릴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는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라는 시가 실려 있었다. 화자가 어려 열에 시달리던 어느 날 밤, 아버지는 눈을 헤치시고 산수유 열매를 구해 오셨다. 이제 나도 아버지만큼의 나이를 먹게 되었고 성탄절에 내리는 눈을 보며 그때의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는 시였다. 그 때는 이 시의 내용이 크게 와닿진 않았지만 그냥 좋아서 늘 외우고 다녔다. 아버지와 같은 나이였다는 ‘서러운 서른 살’이라는 구절이 특히 좋았다.


  어느덧 ‘서러운 서른 살’은 훌쩍 넘어갔고, 어른이 되면서 생겨난 여러 책임감은 한없이 커지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삶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지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로 인해 절망하고 낙담하는 날도 늘어만갔다. 올해는 특히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은 해이기도 하다. 사랑을 실천하러 온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다음 주 성탄절에는 힘들고 지친 모든 이들에게 그 날 하루만이라도 은혜와 축복이 흐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성탄제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 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새 나도

그 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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