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악마를 사랑했다>와 <조디악>
예전에 북유럽에서 피칠갑을 하는 스릴러 장르가 인기인 이유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아마도 현실의 안전 상태가 뒷받침을 해주기 때문에 허구적 세계인 범죄의 세계를 즐길 수 있는 거라고 의견을 모았다. 만약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는 곳이어서 현실과 픽션의 세계가 동일하다면 이를 즐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르웨이 스릴러 작가인 헬레네 플루드는 “상대적으로 평화롭고 안정성 있는 사회가 인간의 어두움이나 상실의 위험을 탐색해보는 데 안전한 기반이 되어주기" 때문이라고 스릴러의 인기에 대해 설명하기도 한다.
지금 내가 속해있는 현실과 명확한 괴리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릴러 장르, 특히 연쇄살인마가 나오는 장르를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만약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실재했던 희대의 연쇄살인마를 다루고 있는 영화라면 어떨까? 허구적 세계가 아닌 실존했던 인물을 다루고 있는 경우라면 영화는 좀 더 사건에 주목하거나, 범죄자를 잡으려는 인물에 주목하게 된다. 넷플릭스 영화 중 실존했던 연쇄살인마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두 편을 통해 그 의미를 들여다보자.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 는 미국의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의 이야기를 극화한 영화이다. 테드 번디는 1970년대 실제했던 전무후무한 연쇄살인마였다. 당시 연쇄살인마라는 용어조차 없던 시대에 주를 이동해가며 살인을 저질렀다. 그는 활발하고 외향적이며, 법대생 졸업생이며,공화당 지지 정치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시애틀 대학가에서 살인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피해자들은 대부분 대학가 근처에서 여대생들이었다.
테드 번디는 많은 일화로 회자가 되는데 범죄를 인정하면 사형은 면하게 해주겠다는 변호사를 자른 후 스스로 자신을 변론하였다. 재판의 모든 과정은 생중계 되었는데 이 때문에 젊은 여성들이 재판을 구경하러 오고, 팬레터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영화의 원제는 <Extremely Wicked, Shockingly Evil and Vile>이다. 이 말은 재판관이 사형을 구형하면서 그의 범죄에 대해 표현한 말이다. 테드 번디는 마지막까지도 범죄를 인정하지 않다가 사형 직전에 죽인 사람을 대겠다며 협상을 시도했는데, 희생자의 가족들이 거부했고 결국 사형을 당하였다. 사형을 당하기 직전에는 자신의 범죄를 인정했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단 한순간의 고민도 없이 자신의 무죄이며, 무고한 용의자를 범인으로 몰아세운 거라며 미국 사법제도를 강하게 비난했다.
테드 번디역을 맡은 잭 에프론을 포함하여 배우들이 모두 실제 인물과 거의 싱크로율 90% 이상을 보여줄 정도로 캐스팅에 신경을 쓴 노력이 엿보였다. 영화의 마지막에 실제 재판 장면과 인물들의 인터뷰 영상이 나오는데 정말 닮았다. 테드 번디의 여자친구인 싱글맘 역을 맡은 릴리 콜린스는 필 콜린스의 딸이기도 하다. 호리호리하고 마른 외형을 지녔는데 , 실제 인물인 리즈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식스 센스>의 아역 배우 할리 조엘 오스몬드는 우리의 뇌리속에 있던 소년의 모습은 전혀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수염 덥수룩한 아저씨가 되어 출연한다.
이 영화의 장점은 흥미 위주의 영상이라기보다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에 근접하여 만든 영상이라는 걸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다. 특히 우리 주변의 평범하게 보이는 사람, 혹은 정말 친절하고 절대 살인범이 아닐 거라고 믿음을 주는 사람이 실제로는 숨겨진 연쇄 살인마일 수도 있음을 각성시키게 해주는 영화이다.
영화 <조디악> 은 미국판 <살인의 추억>이라고 불리우는 영화이다. 실제 일어났지만 미제로 남은 연쇄살인사건을 영화로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의 장점은 영웅적 인물이나 잔악한 살인사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범인을 쫓는 지난한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작품으로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게 만들어주는 영화이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흥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1969년부터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을 다룬다. 어느 날, 조디악의 편지가 신문사에 배달되는데 그 편지엔 살인 일지와 함께 동봉된 암호문을 신문 1면에 싣지 않으면 추가 살인을 저지르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로버트 그레이스미스는 이 신문사의 만평가이며 암호를 푸는 걸 좋아하는 인물이다. 그는 조디악의 암호를 해석하는 데 매달리며 어떻게 해서든지 사건의 수수께기를 풀고자 한다.
로버트는 조디악의 악랄한 범행에 놀아난 형사들이 모두 이 사건을 포기하고 물러난 뒤에도 끝까지 범인 검거를 멈추지 않는 지구력을 가진 인물이다. 조디악의 암호를 푸는데 온 정성을 다하는 탓에 가정생활에 소홀해지고, 아내와의 관계도 소원해지지만 그는 수사를 멈추지 않는다. "도대체 이 일을 왜 하는건데?"라고 묻는 아내에게 "아무도 하지 않으니까." 라고 답변을 한다. 그 이유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다그치는 아내에게 그는 “그의 눈을 바라보며 범인이 맞다는 걸 느끼고 싶어”라며 의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조디악을 향한 수사에는 어떤 정공법이나 지름길이 없다. 느리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알아내겠다는 끈질긴 집념만이 있을 뿐이다.
실제 범인을 찾아나가는 장면에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장면이 많다. 영화 포스터때문에 찾아 갔던 밥의 집 장면은 정말 조마조마했다. 지하실에 영화 필름이 있다고 하자 로버트가 "캘리포니아엔 지하실이 별로 없는데" 라고 하며 따라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숨막힐 정도의 느낌이었다.
러닝타임이 길고 사건이 해결되는 게 아니기때문에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데이빗 핀처 감독의 의도는 사건을 쫓는 이의 집념을 보여주는 데에 있었다.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긴장감을 놓지 않고 볼 수 있는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