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

왕가위 감독 <화양연화> 다시 보기

by 책읽는 리나


독서모임분들과 왕가위 감독 영화 전작 보기 모임을 하고 있다. <중경삼림>을 시작으로 <아비정전>에 이어 이번달에 본 영화는 <화양연화>이다. 왕가위 감독 영화와 하루키, 김영하 소설 다시 읽고 보기를 하고 있노라니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처음 이 영화가 개봉된 이후 여러 번의 재상영이 있었는데 지난 달에는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하기도 하였다. 올해 12월 24일에 (크리스 마스 전날이라니!) 리마스터판으로 재개봉을 한다고 하니 꼭 다시 극장에 가서 보아야겠다. 2000년도에 이 영화를 보았을 때와 20년이 지나서 다시 보니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절제된 영상과 편집, 여운이 남는 결말이다. 영화의 결말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서로 함께 했다면 어땠을까? 두 사람은 행복했을까?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이라는 화양연화같은 시절을 보내게 되었을까?


1962년 홍콩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시작한다 .같은 날 두 가구가 새로 이사를 오게 된다. 홍콩 지역신문사 기자 차우 부부와 무역 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는 수리첸 부부다. 수리첸의 남편은 일본인 무역 회사에 근무해 출장이 잦고 차우의 아내도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 옆집에 사는 두 사람은 좁은 복도나 골목에서 자주 부딪힌다. 그때마다 깔리는 익숙한 음악, 바로 냇 킹 콜의 재즈곡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Quizas Quizas Quizas).이다. 두 사람의 조우에 어김없이 이 음악이 나오며 슬로우모션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차우는 수리첸의 핸드백이 아내와 똑같다는 것을, 수리첸은 남편의 넥타이가 차우 것과 똑같다는 것을 깨닫고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두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있음을 알게 된다. 차우와 수리첸은 각각의 배우자 때문에 가까워지고 서로에게 마음을 뺏긴다. 하지만 도덕적 이유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려 한다.


수리첸은 영화 내내 차파오를 입고 등장한다. 맨날 집에서 티셔츠 쪼가리를 입고 사는 내 눈에 늘 같은 스타일의 화려한 차파오를 입고 나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저 머리는 매일 어떻게 하는걸까 잠시 궁금해 해본다.그러면서 대학교 때 매일밤 머리에 그루프를 말고 잔다는, 대학동창을 떠올려보았다. ) 군살이라는 하나도 없는 장만옥의 몸매 또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녀의 차파오와 화장, 흐트러짐 없는 모습은 어느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심리적 결핌감을 드러내준다.



KakaoTalk_20201107_081502363.png 리마스터링 4K , 2020년 12월 24일 개봉 예정



'화양연화'의 의미는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을 뜻하는 말이다. 수리첸의 남편이 방송국에 보낸 엽서를 소개하면서 이 말의 의미가 설명되어 나온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순간은 화양연화였을까? 그렇지 않음은 이별연습을 하며 서럽게 우는 수리첸의 모습을 보며 느끼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자신들은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이유로 함께 하지 않는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기억난다. 비내리는 골목에서 수리첸이 말한다. "우린 그들처럼 되지 않아요. 우린 그들과 달라요." 그러자 차우가 말한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 수리첸이 묻는다. "나를 사랑했단 말인가요?" 그러자 차우가 대답한다. "나는 모르게 그렇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그런 감정이 아니었지만 점점 겉잡을 수 없게 되었어요."라고.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상 그들 역시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인 화양연화는 오히려 가장 불행한 한때가 되어버렸다.


차우는 자신이 떠나는 것을 선택한다. 싱가폴로 떠나기 전 그는 수리첸에게 묻는다. "티켓이 한 장 더 있다면 나와 같이 가겠소?" 홍콩을 떠나는 내용이 <중경삼림>에서도 등장하는데 이 영화에서도 홍콩을 떠나는 티켓이 등장한다. 수리첸은 떠나지 않고 홍콩에 남는다. 10년 후 1973년,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한 연인들이, 훗날 자신들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를 돌아보는 느낌을 주면서 절절한 회한의 정서를 보여준다. 수리첸은 다시 찾은 아파트에서 창밖을 보며 눈물짓고, 차우는 이루지 못한 안타까운 사랑을 앙코르와트 사원의 구멍에 봉인한다.


영화를 다시 보다보니 편집이 예술이라는 것을 느꼈다. 영화에서 수리첸의 남편과 차우의 아내는 목소리나 몸의 일부분으로 드러난다. 군더더기를 최대한 걷어낸 장면의 절제미가 아름다웠다. 12월 24일 재개봉하는 날, 극장에서 다시 한번 보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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