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인생책 <마틴 에덴>의 영화를 보며
영화 <마틴 에덴>은 미국 소설가 잭 런던의 자전적 소설 <마틴 에덴>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마틴 에덴>은 20대때 읽은 나의 인생 소설 중 한 권이다.
미국 배경의 원작을 1950년대 이탈리아 나폴리로 배경으로 바꾸면서 영화는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을 한다. 영화는 원작의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으면서도 루카 마리넬리가 연기한 마틴 에덴이라는 인물이 생동감이 살아 숨쉬는 느낌이다.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이 집어넣은 영화 사이사이 다큐멘터리로서 영상도 현실을 들여다보는 인식의 깊이를 더해준다. 당시를 살아갔던 사람들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상때문이기도 하고 전체적인 필름 톤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는 상당히 고전적인 느낌을 준다. 같이 보신 분은 옛날 영화인줄 알았다고 한다.
상류층 여성 엘레나에 의해 지성에 눈을 뜨고 창작의 욕구를 불태우는 과정이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거부하며 집단이나 공동체보다는 개인의 삶에 주목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자로서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특히 엘레나가 자신을 떠나고 작가로서 성공하게 되지만 허무와 환멸에서 빠져버리는 연기가 압도적이다. 사랑에 빠졌을 때의 모습과 작가로서 성공한 이후의 모습이 동일한 인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그렇게도 원했던 작가로서의 성공을 거머쥐었지만 그의 내면은 공허할 뿐이다.
마틴 에덴은 교육을 받지 못한 선박 노동자이다. 우연한 기회에 그는 엘레나의 오빠를 구하게 되고, 그녀의 집에 저녁식사를 초대받는다. 그는 엘레나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녀에게 걸맞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을 한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엘레나처럼 생각하고 말하기 위해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하고 특히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에 깊은 영향을 받게 된다.
엘레나는 작가에 대한 마틴의 꿈이 무모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서기 일부터 시작하기를 바라고 마틴과 별탈없이 결혼하길 원할 뿐이다. 마틴은 사회주의자들의 집회에 우연히 참석하게되고 그들과 열띤 토론을 벌인다. 마틴은 사회주의를 비판했지만 그의 모습을 본 기자에 의해 마틴은 맹렬한 사회주의자인 것처럼 기사가 나게 되고, 엘레나의 집안에서는 그녀에게 마틴과 헤어지라고 말한다. 엘레나는 마틴을 떠나고 사회주의자로 낙인찍힌 마틴은 친척, 지인들로부터 외면받게 된다.
그런데 전환의 시기가 찾아온다. 어떤 출판사에서 예전에 보냈던 자신의 소설을 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그 소설은 찍어내는 즉시 팔려나간다. 예전에는 되돌아오기만 했던 그의 작품들을 출판사들이 모두 판권을 사갔고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마틴은 순식간에 사회의 명사가 된다. 마틴이 작가로서 성공하게 되자 모두가 마틴을 다르게 대한다. 마틴이 쓴 시와 소설들은 전부 어려웠던 시절에 썼던 것이고 잡지사와 출판사에 수많은 퇴짜를 받았던 것들이었다. 그것이 돈의 힘이라는 것을 아는 마틴은 미디어의 속성과 돈과 명예만을 쫓는 사람들의 가식에 환멸을 느낀다. 엘레나는 찾아와 재결합을 요구한다. 마틴은 모든 인간관계가 계산적이며 지성이라는 것의 실체 역시 허위와 위선, 가식과 욕망으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에 절망에 빠진다. 영화의 결말은 바다로 헤엄쳐 가는 마틴의 죽음을 암시하며 끝이 난다.
마틴 에덴의 소설을 읽은 누나는 왜 이렇게 어둡고, 슬픈 이야기를 쓰느냐고 묻는다. 즐겁고 기분 좋은 이야기를 쓰면 안되는거냐고? 엘레나 역시 비슷한 말을 한다. 마틴은 엘레나를 자신이 사는 빈민계층이 지내는 곳에 데려가 그 실상을 보여주며 말한다. 내가 경험하고 보고 겪는 일들이 이런 건데 왜 이걸 작품에 쓰면 안되냐고? 나는 마틴의 말에 동의한다. 내가 보지 못한다고 해서, 그 일들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겪고 있을 불행과 어려움에 대해 우리는 눈을 돌려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해주는 사람 중 한 명은 바로 작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