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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중경삼림> 다시 보기

by 책읽는 리나



왕가위 감독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중경삼림>이 아닐까 싶다.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 과 왕페이의 <몽중인>을 아직도 듣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동사서독>을 만들면서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힘빼서 만든 영화였던 <중경삼림>이 당시에 이렇게 엄청난 흥행을 이끌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다.


이 영화는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는 두 편을 연결해서 만든 작품이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는 223번 경찰(금성무)이 만우절날 이별을 선언하고 떠나버린 여자를 잊지 못하는 내용이다. 그는 시간만 되면 패스트푸드점에서 헤어진 옛 애인을 기다린다. 자신의 생일이자 옛 애인과 헤어진 지 딱 한달이 되는 5월 1일이 유통기한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모으고 있다. 만약 30개의 통조림을 샀는데도 그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고 단념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는 바에 처음 들어오는 여성을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이 때 바에 들어오는 사람은 마약중개상인 임청하이다.


오랫만에 다시 보니 금성무의 앳띤 모습이 인상적이다. 경찰 223은 함께 호텔에 가게 되지만 그녀의 구두만 닦아준 채 방을 떠나간다.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만 년으로 하고 싶다."라는 대사가 인상적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경찰 663(양조위)은 매일 밤 가게에서 언제나처럼 똑같은 샐러드를 사서 먹는다. 이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 페이는 663을 남몰래 좋아하고 있다. 어느날, 663의 애인이 이별의 편지와 함께 아파트 열쇠를 페이의 가게에 맡긴다. 그 후 페이는 이 열쇠를 가지고 663의 아파트에 들어가 옛 애인의 흔적을 하나씩 없앤다.



https://youtu.be/qnPPyyRabjo


이 영화의 묘미는 왕페이가 경찰 663의 집에 와서 청소를 하고 수건이나 인형, 금붕어 등을 바꾸어나가면서 자신의 방을 바꾸어나가는 데 그는 이 사실을 모른다는 데에서 오는 모습에서이다. 두 사람의 모습은 기존의 사랑 영화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다.


663은 애인이 떠나고 나서 심리적으로 허함을 느끼고 있다. 집에 있는 사물들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켜 대화를 나눈다. 비누에게는 왜 이렇게 야위었냐며 말을 건다. 영화를 보다가 <몽중인> 노래가 흘러나오면 지금도 뭔가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청소를 시작해야 할 것 같은 새로 시작하고 싶은 느낌이 들어 좋다. 아슬아슬하게 하나의 공간에 서로 다른 시간에 존재하던 두 사람은 드디어 마주치게 되고, <드림스> 노래를 들으며 두 사람은 쇼파에서 잠이 든다. (말이 돼? 라고 할 충분한 상황이지만 보다보면 그냥 모든 게 당연히 느껴진다.)


이 영화는 음악만 들어도 정말 마음이 흔들린다. 홍콩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영화와 함께 잘 녹아든다.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 나타나지 않았던 왕페이는 1년후 스튜어디스가 되어 나타난다. 그녀가 준 1년후 비행기 티켓의 좌석번호는 663. 양조위는 비에 젖어 목적지가 지워진 티켓을 들고 물어본다. 이 티켓을 사용할 수 있냐고. 왕페이는 "어딜 가고 싶으세요?" 라고 묻고 양조위는 "당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라고 대답한다. 당시 반환되기 전 홍콩의 젊은 사람들의 마음이 이를 대변하지 않을까 싶다. 당신과 함께, 어디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곳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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