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일출을 보러 같이 가자는 친정 식구들을 따라 동해에 간 적이 있었다. 추운데 굳이 해가 뜨는 광경을 보아야 하나 툴툴 대면서 나선 참이었다. 새벽 찬바람이 매서워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태양의 붉은 기운은 바닷속에서부터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해는 아주 천천히 올라왔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분명 어제와 같은 오늘이지만 새로운 시간을 맞이한다는 느낌에 가슴이 벅찼다. 평소에 새해가 되었다고 계획을 세우거나 다짐을 하는 편은 아니었다.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날마다 꾸준히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심삼일이라는 실망을 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날은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나도 모르게 새해 소망을 빌어보고, 이루고 싶은 일을 떠올려 보았다.
2021년 새해가 밝았다. 작년까지의 삶을 돌아보면 감사하고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불운과 시련을 겪지 않았고, 몸도 크게 아프지 않았으며, 가족들도 별일 없이 살아오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생활에 많은 제약이 생기긴 했지만 생계에 영향을 받는 분들에게 비할 바가 아니다. 한때는 겪고 있는 불행을 크게 확대해서 나만 왜 이런 일을 겪나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왜 이런 대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나 절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기도 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마음도 변화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필요 이상으로 의미를 부여하거나 상황을 나쁘게만 해석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2020년도 나의 지향점을 핵심 동사로 표현해보면 "쓰다"와 "읽다" 두 개 였다. 2019년도에는 "읽다"에 방점이 찍힌 한 해였다면, 2020년도는 "쓰다"에 좀 더 주력했던 시간이었다. 2020년도의 목표는 “2019년도에 계약한 두 편의 원고를 마무리한다” 였다. 이것도 절반의 실천, 절반의 유예였다. 수상작 읽기 원고는 마무리를 해서 10월에 출간을 했지만 아이와 책을 통한 소통에 대한 원고는 결국 마무리를 못했다. 목표를 지키기 위해 12월 31일인 한 해의 마지막 날에라도 원고를 어떻게든 마무리하여 보내볼까 했는데 미완성이라 보내지 못했다. 가장 큰 요인은 시간 투자임을 내 스스로도 알고 있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어야 하는데 다른 여러 글을 이것저것 쓰느라 완성하지 못했다. 매달 이번달 까지는 완성해야지, 라고 늘 다짐했지만 매달 마지막 날이 되면 결심은 그냥 스르륵 풀려버리는 털실처럼 풀어헤쳐지고 말았다. 2021년도에는 지금 쓰고 있는 몇 편의 글들을 마무리하는 걸 목표로 해보려고 한다.
더불어 마음도 재정비하는 시기로 삼아보고자 한다. 김연수 작가는 <소설가의 일>에서 ‘흔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흔치 않은 사람이 되자’며, ‘미문을 쓰겠다면 먼저 미문의 인생을 살자’는 말을 건넨다. 자신의 평범한 일상에 늘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도 덧붙인다. 2021년 새해의 아침, 작은 다짐을 해본다. 올해에는 긍정적이고 밝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들을 통해 행운을 충전하고 내 운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 어떨까 싶다. 가진 것을 감사하고 본래의 나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놓지 않으면서 말이다.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