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개는 사람에게 복종하고, 인간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동물임에 비해 고양이는 다르다. 고양이에게 복종의 유전자는 없는 듯하다. 고양이는 언제나 느리고 우아하게 걷는다.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습성도 좋고, 기분좋을 때 내는 가르릉 소리도 마음을 편하게 한다. 흔히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을 ‘집사’라고 부른다. 집사라는 말은 고양이가 자신을 키우는 사람을 주인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마치 동일한 위치이거나 오히려 좀 더 낮은 위치로 대하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고양이의 대표적인 특성은 도도함이다. 주인이 왔다고 해서 개처럼 문 앞까지 달려 나와 꼬리를 치며 반겨하는 모습이란 대체로 없다. 어슬렁거리며 느리게 걸어 나와 “왔냐?” 정도의 시선을 던지고, 무심하게 누워 털을 핥기 시작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기도 하지, 그 모습이 매력적이다.
내가 키우던 고양이의 이름은 시로였다. 시로는 일본말로 하얗다 라는 뜻이다. 눈처럼 하얀 시로는 그다지 영리한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둥이들이 세 살 때부터 기르기 시작했는데 아이들을 양 옆에 눕히고 세 명이서 자면 시로까지 그 옆에 와서 잤다. 이불을 꾹꾹 눌러가면서 말이다. 아이들이 다섯 살 때 주택을 지어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 아파트에서 짐을 빼야할 날짜와 이사를 들어갈 수 있는 날짜가 맞지 않았다. 집의 내부 공사가 완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이전 아파트의 게스트룸을 빌려서 보름 정도를 살았다. 게스트룸에서는 고양이를 기를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때 고양이를 오빠네 집에 맡겼다. 새언니는 고양이 털이 날리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로를 맡아주셨다. 며칠 후 언니의 카톡 프사에서는 "고양이가 되어간다" 라는 글이 올라왔다.고양이 털이 날리면서 옷과 집안 곳곳에는 고양이 털이 날렸는데 깔끔한 성격의 새언니는 이를 참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 기간동안 소파까지 긁어놓았다. 그 뒤로도 소파를 볼 때마다 죄송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집으로 들어가게 되어서 오빠네집에 들러 시로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1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였는데, 시로는 계속 괴로운 듯 소리를 질러댔다. 아주 아기였을 때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차를 탄 것이라 멀미를 하는 것 같았다. 시로의 소리는 마치 마치 한국말을 하는 것처럼 들렸다. "속이 안 좋아용". 유튜브 영상에 보면 한국말 하는 고양이 영상이 많이 있는데 마치 그런 소리 같았다. 조금만 참으라고 계속 말했는데, 집 근처는 좁은 도로에 과속방지턱도 많은 도로여서 승차감이 점점 더 안좋았다. 시로는 계속 외쳐댔다. "정말 속이 안 좋다고야오용.."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시로에게 "다 왔어" 라고 말하고 집에 내려놓은 순간, 고양이가 웩 하고 토했다. 고양이의 토사물을 치우고 목욕을 시키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착한 고양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시로는 그리 착하지도 다정하지도 않은 편이었다. 그래도 식구들 중에서는 나를 제일 따랐다. 시로는 말을 잘 듣지도 않았다. 식탁위에도 올라오고, 싱크대 위에도 올라다녔다. 엄마가 가끔씩 집에 오셔서 이 광경을 보시면 질겁을 하셨다. 혼내고 해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덕분에 싱크대나 식탁 주변에 음식을 바로 먹고 치우는 습관이 생겼는데, 잠시 접시를 두어야 할 때는 전자렌지 안에 넣어두었다. 마지막에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나를 많이 고생시켰다. 그래도 여전히 시로가 자주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