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왜 내리는 걸까?
가난한 내가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눈이 내린다.
큰 아이의 학교에서는 한 한기에 한 번씩 작가를 초청해서 강연을 했다. 2학년때는 신용목 시인이 와서 강연을 했다. 부모들도 원하면 참여할 수 있었는데 당시 나는 총무 직함을 가지고 있었던지라 (총회 때 갔다가 잠시 정신이 혼미해서 손을 들어버리고 말았다) 참석해서 강연을 들었다. 그날 강연 내용 중 아버지와의 일을 이야기해주었는데 몹시 인상적이었다.
신용목 시인이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고 있었는데 마침 밖에서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밥을 먹던 아버지는 시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버지는 대학원까지 졸업한 아들이, 결혼까지 했으니 뭔가 이제 밥벌이가 될만한 일을 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계셨다. 아버지는 눈은 왜 내리냐고 물었는데 신용목 시인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립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구절이 떠올라서 이런 대답을 했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이 말을 듣더니 밥을 먹던 숟가락을 내동댕이치며(잡채를 먹고 있으셨다고 했나? ) 어머니에게 자식 하나 없는 셈 치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몇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시도 안 읽고, 시인도 모르면서 나는 시인의 감수성과 예민함을 사랑한다. 팽팽한 실처럼 당겨져 있는 고민들이 가슴에 와닿는다.
이틀 전 눈이 왔다. 새벽에 어쩌다가 일어났는데 이미 창밖 세상은 흰 눈으로 덮혀 있었다. 흰 눈이 오니 문득 이 시가 떠올랐다. 소설은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특징이 매력적이지만 자꾸만 이건 이야기야 라고 생각한다. 시는 그렇지 않다. 화자의 마음이 깊이 느껴진다. 백석은 나타샤와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라는 말하지만 나는 이제 세상을 버리고 살아갈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 것 같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 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