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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리나 Jan 14. 2021

쌍둥맘 모임

쌍둥맘이라는 연대감 

 


단일 모임으로 가장 오래한 모임을 꼽아보라면 단연 쌍둥맘 모임입니다. 쌍둥맘 모임을 하게 된 건, 당연한 말이지만 제가 쌍둥이를 낳았기 때문이지요. 큰 애가 아홉살일 때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집 근처의 병원을 갔는데 초음파를 보시던 선생님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쌍둥이네요" 라고 말을 하시더군요. 얼마나 놀랐는지 벌떡 일어나다가 그만 진찰대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뻔 했습니다. 그럴리가 없다며 다시 한번 봐달라고 매달리다시피 말을 했습니다. 


터울이 많이 나는 임신만으로도 걱정이 한 가득이었는데 쌍둥이 임신이라니요. 게다가 양쪽 집안 모두 쌍둥이 내력이 없었기 때문에 쌍둥이를 임신할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쌍둥이 임신이라며, 노산이니 무리하지 말라는 말까지 쿨하게 덧붙였습니다. 걱정스럽고 심란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고 친정 식구들에게는 며칠이 지나서야 알릴 정도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이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기쁨은 그때까지였습니다.


 곧 배는 무서울 정도로 불러오기 시작했고, 걷기도 눕기도 힘들어졌습니다. 막달에는 앉았다가 일어날 때 누가 잡아주지 않으면 일어나지 못했고, 배 위에 책을 놓고 독서를 해도 될 정도로 배가 점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 배가 터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하루하루가 긴장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들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10년 만의 육아, 게다가 쌍둥이 육아는 정말로 만만치 않았습니다. 큰 애를 키워본 경험은 있었지만 쌍둥이 육아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두 아이를 동시에 키워야 하니 손이 몇 개라도 부족했습니다. 예방접종을 하러 나갈 때마다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이었고 얼마나 정신이 없고 긴장이 되던지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내리는 일만으로도 계절에 상관없이 옷은 땀으로 흠뻑 젖곤 했습니다. 백일사진, 돌 사진도 스튜디오로 가지 못하고 집으로 출장사진을 불러 찍을 정도였지요. 외출 포비아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매 순간 찾아오는 막막함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육아의 어려움으로 인해 '도대체 감당하지도 못하는 쌍둥이를 왜 낳았을까?' 울적해지기도 했고 , 심지어는 '암만 생각해도 전생에 죄가 많아서 이 고생을 하는구나'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온라인의 쌍둥맘 카페를 알게 되었지요. 외출이 쉽지 않고 오프 만남이 어려운 상황에서 카페는 같은 쌍둥이를 키운다는 공감대만으로도 심리적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쉼터가 되어주었습니다.


 처음으로 큰 맘 먹고 카페 정모를 간 적이 있습니다. 빙 둘러앉아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선배 둥이맘께서 자신을 소개하면서 둥이가 어렸을 때 에피소드를 들려주었습니다. 둥이들이 아직 어릴 때, 길을 가다가 선배 둥이맘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울음이 터져서 아무말도 꺼내지 못한 채 길에 서서 한참을 펑펑 울었다는군요. 그 상황에서 선배는 그냥 말없이 등을 두드려주었다고 합니다. 몇 년이 훌쩍 지난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그때를 떠올리며 눈물을 보였는데, 그 이야기를 듣던 순간의 저도 괜시리 눈가가 젖어왔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어떻게 키우는 게 좋을까 고민을 하다 쌍둥이 육아만큼은 무엇보다 커뮤니티가 중요하다고 느끼게 되어 쌍둥맘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카페에 글을 올려 번개를 한 뒤 12명의 분과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쌍둥맘 모임에서는 1년에 한 번씩 경기도 인근의 팬션으로 1박 2일로 놀러가곤 했는데 10명의 엄마가 쌍둥이를 데리고 가면 무려 30명이 모이게 되는 셈이지요. 항상 제일 큰 독채 팬션을 빌리곤 했는데 우리를 보면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엠티를 나온게 아니냐고 묻곤 했습니다.


 흔히 쌍둥이를 키우려면 어른 네 명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엄마 혼자서 아이 둘을 데리고 오니 첫 해에는 밥을 먹는 것은 고사하고 애들 쫒아다니면서 뒤치닥거리하는데 치여 지쳐쓰러질 정도였습니다. 고기를 구워먹겠다고 준비해왔는데 결국 제때 구울 여력이 되지 않아 해물과 고기는 다 타버렸지요. 그래도 탄 부분을 대강 잘라내고 먹었는데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정신없는 상황도 익숙해지게 마련인지 해가 거듭할 수록 요령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줄과 풍선, 비눗방울 놀이 등 여러 가지를 준비해서 역할 분담을 했습니다. 식사를 준비하는 분, 아이들과 놀아주는 사람 등 역할을 나누어서 하니 훨씬 더 여유가 생겨나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모임을 했는지 신기할 정도이지만 쌍둥이를 키우면서 가장 큰 힘이 되어준 모임이었습니다.




아이들 다섯살 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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